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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FBI 초대 한국지국장 이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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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사람] FBI 초대 한국지국장 이승규

입력
200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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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는 외부압력에 휘둘리진 않아요"미국 연방수사국(FBI) 초대 한국지부장으로 와있는 이승규(李承圭ㆍ42)는 FBI도 '인터뷰'를 잘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몇 달째 매주 한 번씩 사람을 만나 묻고 들은 걸 기사로 써오고 있는 기자에게 그가 FBI도 '인터뷰'를 잘 해야 한다고 한 연유는 이렇다.

FBI 수사관을 16년이나 했으면 범인 잡느라 총도 여러 번 쏘았겠다. 미국 범죄영화를 보면 온통 총질만 해대지 않느냐.

"현장에 갈 때는 총을 꼭 가지고 나가지만 여태 현장에서 총을 쏜 적은 한 번도 없다.

잡으러 간 범인이 방에서 총 빼고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실패한 수사다. 주변의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 총격전은 피해야 한다. 영화는 총 쏘는 장면이 없으면 재미 없으니까 그렇지, FBI수사관이나 그 범죄 많은 뉴욕의 경찰 중에서도 30년간 총 한 번도 안 쏘고 은퇴하는 사람이 숱하다"

_ 그렇다면 범인을 어떻게 잡느냐, 총도 안 쏘고.

"범인이 방심할 때, 덮치는 거다. 경험으로 봐서 보통 새벽 5시 쯤이 좋다. 잠자고 있을 때고, 깨어있다 하더라도 판단이 흐려서 모질게 대응을 못한다. 1명을 잡으려면 보통 수사관 10명 정도가 출동하는데 총이 필요한 건 100건 중에 한 건 정도다."

_그렇다 치고, FBI수사관으로 당신의 장점은 뭐냐.

"나만 그런 건 아니지만 FBI수사관은 잘 묻고, 잘 듣고, 잘 써야 한다. 그게 인터뷰 아니냐. 피의자는 물론, 피해자들로부터 명확한 진술을 얻어내, 수사보고서를 조리 있게 작성해서 법원이 인정할 수 있는 증거로 만들어야 한다.

FBI가 다루는 범죄의 상당수가 지능형 범죄이므로 인터뷰 기술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는 마감시간이 없으니 기자들보다 편할지는 모르겠다만."

사실 기자는 15년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기자가 한국일보 하와이지사에서 근무했던 85년 11월 어느날 FBI에 갓 들어가 FBI하와이지부에서 FBI 생활을 시작했던 그가 기자의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있다. 한국계 피의자를 찾는다는 수배전단을 신문에 실어달라고 온 것이었다.

그때도 기자는 '한국계 FBI수사관'이라는 점이 신기해 그의 부탁도 들어주면서 하와이에서 발행되는 한국일보에 그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15년 만에 다시 만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주 원숙해져 있었다.

"내개인 이야기보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느냐, FBI가 하는 일이 뭐냐, 이거를 많이 써달라"고 말문을 연 그는 기자에게도 "예전보다 훨씬 노련해보인다"고 말했다. 하긴 기자도 당시 기자생활 7년차로 아직 앞가림도 제대로 못할 무렵이었다.

_전에 만났을 때보다 우리말을 아주 잘 한다. 부임한지 다섯 달이 됐는데 그 동안에 새로 배운 거냐.

"여기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갔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되겠느냐.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민간 게 아주 잘 된 것 같다. 양쪽 언어를 모두 잘 구사할 수 있고 문화도 양쪽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_그 때는 FBI에 한국계는 몇 명 안 된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몇 명이나 되나.

"내 앞에 두 분이 있었는데 모두 은퇴했고, 내가 들어간 다음에 여러 사람이 들어와 지금은 35명쯤 된다.

_FBI에는 어떻게 해서 들어갔나.

FBI가 다루는 범죄 중에는 지능범죄가 많은데 지능범죄는 거의가 경제적 범죄 아니냐.

그래서 FBI수사관의 4분의 1은 회계사거나 회계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서울 사대부중을 졸업하고 이민 가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메릴랜드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는 사람 중에 FBI수사관이 한 명 있었다. 그가 회계학을 공부했으니 FBI를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시험을 보았더니 덜컥 합격해버렸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다. 재미는 뭐, 임지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미라면 재미겠다."(4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그는 하와이지부를 거쳐 LA, 뉴욕, 워싱턴에서 근무했다.

한국인 관련범죄가 늘어나면서 한국인 수사관이 필요한 곳에는 임지와 무관하게 파견돼 일을 하기도 한다. FBI의 경쟁률이 높은 건 영화나 TV에 비춰진 FBI의 '전설적'인 활동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_어려움은 없었냐.

"소수민족으로서의 어려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시험에 합격해 FBI학교에서 네달간 훈련 받을 때 워낙 쟁쟁해보이는 동기들이 많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한 적은 있다.

동기들의 평균연령이 31살이었는데 나는 25살밖에 안됐고, 경찰이나 군 장교 출신도 많아 저 틈새에서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군대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안 들었고. 그런 걱정을 하고 있노라니 한 교관이 '다른 애들도 너하고 같은 걱정을 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할 것 없다. 이왕 들어왔으니 의무복무 기간인 3년은 채워봐라. 그러고도 못 할 것 같으면 그만 둬도 되지 않느냐'고 충고를 하더라.

그때 잘 견뎠더니 이렇게 초대 지부장으로 한국에도 오게 된 것 같다."(FBI는 세계 44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데 몇몇 나라는 지부장자리를 두고 경합이 치열한 편이다. 한국지부장 자리를 놓고도 여러 명이 경합했는데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 가운데서는 가장 선임인 그가 선정됐다.)

_그런데 여기서는 도대체 무얼 하느냐. FBI가 서울서 하는 일은 뭐냐.

"크게 세 가지다. 제일 중요한 건 미국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망해온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서 죄를 짓고 미국으로 달아난 사람들을 찾는데 한국수사기관에 협조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한미간 수사기술교류 지원이다. 아, 미국서 발생한 한국기업이나 한국인이 연루된 사건 수사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한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 있나.

"살인범 두 사람을 찾고 있는데 둘 다 재미동포다. 한 사람은 19살 때 전직 경찰관인 노인집에 들어가 강도를 하다가 그 노인을 살해했으며 또 한 명은 갱단이 되고 싶어하다 잔인성과 용감성을 인정 받으려고 라틴계 갱 단원을 뒤쫓아가 머리에 총을 쏴 살해한 혐의다."

_어떻게 찾으려고 하느냐.

"한국에서는 내가 수사권한이 없으니 직접 수사를 해서 찾을 길은 없다. 그래서 우선은 KBS 추적 25시에 사진과 범죄사실을 좀 내달라고 할 생각이다.

혹시 같은 피, 같은 민족인데 미국에서까지 쫓아와 잡아서 보내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둘 다 악랄한 범죄로 미국에서 선량하게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체포, 송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능범죄도 국제화되어 미국서 발생한 사기사건에 한국기업도 자주 피해를 당하는데 피해사실을 확인하려고 해당기업에 문의하면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게 싫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피해를 당한 돈이 정당하게 반출된 게 아니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_수사기술교류를 지원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한다는 거냐.

"미국 수사교육기관에 한국 수사관들의 연수를 주선하거나 새로운 수사장비가 나오면 소개를 해주고, 한국경찰이 외국에서 장비를 새로 들여오면 어떻게 사용하는 가를 가르쳐주는 일 같은 것이다. 얼마 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돌아봤는데 수준이 아주 높더라."

_한국 수사기관과 FBI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똑 같지 뭐. 그런데 한국 수사기관은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에 너무 민감한 것 같더라. 그런 압력이 높아지면 수사를 아주 빨리 진행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FBI는 외부적 압력에 수사의 속도가 좌우되지 않는다. 압력이 있다면 FBI 내부의 압력이 있을 뿐이다. 빨리 해결해야 후속범죄를 막을 수 있다든지 하는 판단이 설 때 그런 압력이 강해진다."(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 이상 했던지 "한국경찰이나 FBI나 똑같다고 써달라"고 말했다.)

-수입은 얼마나 되나.

"액수로야 여기 경찰보다는 많이 받겠지만 집세를 빼면 별 여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경찰 수준 정도라고 보면 된다."(그는 경희대를 중퇴하고 이민 간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_임기가 3년인데 돌아가면 어떤 대접을 받나.

"이번에 나오면서 승진을 했으니 '평 수사관'에서는 벗어나겠지. 그에 따르면 FBI에는 계급은 없고, 관리직을 뺀 나머지는 전부 '수사요원(Special Agent)'으로 불리며 경력에 따른 임금 차이만 있다.

_FBI는 간첩사건도 다룬다는데 '로버트 김'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나.

"누구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벗어나는 게 불법이라면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 정도로만 말하자. 판사가 증거를 보고 결정한 것인데‥."

_참 정말 FBI에 'X-파일'이란 게 있느냐.

"있을 리가 있나. 그것도 영화다. 그 영화는 나도 보는데 재미는 있더라."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사진=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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