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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지구를 쉬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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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지구를 쉬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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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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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연말이 되고 새해가 오는 걸 해마다 차분히 지켜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모두가 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연말이 진정 20세기와 2000년대의 마지막 주간이기 때문이다.예수탄생을 원년으로 잡은 서력기원은 AD 1년이 1세기의 시작이었으므로 2001년이 21세기와 새 밀레니엄의 시작이 되어야 맞다. 올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밀레니엄 열병은 사실 2001년 일을 성급하게 앞당긴 것들이었다.

수없이 벌어진 '밀레니엄 사업'은 대부분 정치성 이벤트들이었다. 그런 쇼들이 모두 끝났으니 정작 새 밀레니엄을 맞기에는 차라리 조용해서 좋다.

20세기는 인류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탐욕과 무작정 개발, 그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의 문명이었다. 그리고 지나간 천년은 인간이 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대역(大逆)의 기간이었다.

그런 반성과 함께 새 세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과 화해하는 새로운 문명의 설정이고 건축과 도시에서는 저비용 고효율의 친환경적, 생태적 하이테크의 추구이다.

과거 문명의 마지막 카드였던 '지속가능한 개발'논의는 오히려 '지구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개발의 포기'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대기가스 배출량규제협약은 '개발의 포기'인 것이다.

100년전에 미국에서는 옴스테드(F.L.Olmsted)라는 사람이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만들고 여러 도시에 나무심기를 권하였는데 오늘날 보스턴 시내를 길게 가로지르는 울창한 숲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쎄쿼이아 숲에는 천년 넘은 나무들이 사람들 보다 훨씬 오래 살아서 역사의 변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는 공해를 알고 음악을 들으며 베면 아파하는 생명체이다. 또 나무 숲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병실 창으로 숲을 내다 볼 수 있는 환자가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회복이 빨라 입원기간이 훨씬 짧고, 진통제의 투여량이 적으며 간호보고서에 나타난 부작용도 적다.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는 주민은 우호적이고, 이웃과 잘 어울리고, 서로 잘 뭉치며, 강한 소속감을 가진 반면, 숲이 없는 곳 사람들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서로 잘 알지 못했다.

학교주변의 녹색밀도가 학교폭력과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환경청의 보고 때문에 일본 교육당국은 학교주변 녹화사업을 대대적으로 펴고 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나무를 베었다. 그리고 그 일은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하나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1차 대전 후 나무를 마구 베어 황량한 프로방스 지방의 고원지대에 혼자 매일 나무를 심고 가꾼 한 양치기의 헌신으로 숲이 살아나고 오늘의 프로방스가 된 감동의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이 지구를 쉬게 하고 숲으로 뒤덮이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일을 한국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이 분주한 연말에 그런 생각을 한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8%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하늘, 땅, 물, 지하, 드디어는 정신까지 오염시킨 우리에게는 특별히 그럴 책임이 있다.

우리는 후손과 나누어야 할 공동의 유산을 가로채 독식한 것이다. 지금부터 100년 동안 온 나라에 나무를 심어서 200년 후에 푸른 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다시 되어야 한다. 도시에는 재건축대신에 숲가꾸기, 산과 들에는 개발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무심기, 바다밑까지도 해초의 숲을 되살리기가 100년쯤은 지속되어야 한다.

연말에 나무마다 장식 등을 다는 일이 나무들에게는 전기고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21세기에는 국정의 최우선 순위가 환경이어야 한다.

이제 환경이 경제를 위해서, 경제는 환경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진짜 '밀레니엄 사업'이어야 하는 것을.

김원ㆍ건축가ㆍ광장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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