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 김용준(1904~1967)은 20세기 화단을 수놓은 뛰어난 화가이자 비평가, 미술사학자였다.수필문학의 전범으로 꼽히는 '근원수필'(1948년)을 뿐 아니라 걸작 수묵담채화 '춤'(1957), 한국미술사 연구의 명저 '조선미술사 대요'(1949년)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일제시대부터 활동한 당대의 논객이요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그는 6ㆍ25전쟁 발발 직후 월북, 북한에서 화가 겸 미술사학자로 일세를 풍미했다.
출판사 열화당은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첫 인물로 김용준을 선정, 다섯 권 짜리 '근원 김용준 전집'의 제 1권 '새 근원수필'과 제 2권 '조선미술 대요'를 내놨다.
'새 근원수필'은 1948년판 '근원수필'에 빠졌거나 나중에 발표된 글 23편을 더해 모두 53편을 엮은 김용준 수필의 완결판이다. 한결같이 품격이 우뚝한 글들이다.
날카로우면서 익살맞고, 산뜻하면서 묵직하고, 문학과 예술의 깊은 향기를 품고 있다. 유려하고 담백한 문장과 문사철(文思哲)을 아우르는 깊은 지성과 감성이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50년의 세월을 견디고도 전혀 낡지 않은 이 글들을 읽노라면, 얄팍한 감상을 끄적거린 잡글이 수필이랍시고 행세하거나 모국어 학대에 가까운 부박한 글쓰기가 횡행하는 요즘 풍경이 부끄러워진다.
'새 근원수필'은 꼼꼼하고 정성스런 편집 덕분에 아름답고 충실한 책이 됐다. 근원이 남긴 그림과 삽화, 참고 사진과 작품을 곳곳에 넣어 이해를 돕고, 페이지마다 낯선 낱말이나 한시, 인명 풀이를 달고, 말미에 연보와 찾아보기까지 붙였다.
1949년에 나온 '조선미술 대요'는 해방 뒤 우리 미술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 미술의 역사를 맛깔스런 문체로 누구든 알기 쉽게 썼다.
근원 자신은 "미술사라기보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미술품이 왜 아름다우며 어떠한 환경에서 그렇게 만들어졌가를 밝혀 보려 애썼다"고 말하고 있다. "무지를 폭로할 각오로 썼다"는 겸사와 달리 우리 미술의 특징을 단박에 잡아내는 혜안이 빛난다.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시리즈는 우리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를 마련했던 선학의 글을 통해 참된 인문정신을 되살리고 오늘의 사표(師表)로 삼고자 기획됐다.
근원 김용준 전집 외에 근대사학자 문일평(1888~1939)의 선집 '예술의 성직(聖職)', 미술사학자 윤희순(1902~1947)의 '조선미술사'가 내년 1월 출간되며, 고유섭과 최남선의 문화예술론도 나중에 나올 예정이다.
김용준 지음 열화당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