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몇 살까지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살짝 가져다 놓는다고 믿을까. 통계는 없지만 아마도 예전보다 몇 살쯤 더 어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아이들에게 무조건 "성탄은 기쁜 것이야" 하고 말할 수 있을까.'그린치' 는 이런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다가설 만하다. 연말 분위기와 별 관계는 없지만 점토 애니메이션 '치킨 런' 도 어른들과 함께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이다.
▲그린치
평소엔 안부도 안 챙기다가 공연히 친한 척, 그 동안 매우 보고 싶었다는 척 해야 하는 연말. 대체 한해가 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람, 대체 교회에도 안 다니는 데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람,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영화가 '그린치(The Grinch)'이다.
'누군가들의 마을'인 '후빌'에 사는 '후(누군가)'들. 공동체적 애정이 들끓는 이 마을에 축제를 싫어하는 딱 한명이 있었다. 바로 그린치(짐 캐리). 그는 후빌 마을의 크럼피트 산에 떨어져 사는 '맥스'라는 개와 단둘이 살고 있다. 쥐처럼 생긴 후빌 사람들과 달리 마치 개도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것처럼 푸른색 털로 뒤덮힌 '그린치'는 성탄절에 대한 원한이 깊다.
12월25일, 요람을 타고 마을로 내려온 아기 그린치는 파티하는 사람들 때문에 밤새도록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시작, 역시 크리스마스 날 좋아하는 여자 친구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이후 산으로 올라가 쓰레기를 먹으며 살고 있다.
그의 꿈은 크리스마스를 박살 내는 일이다. 축제가 남긴 많은 쓰레기, 그 쓰레기를 먹고 사는 그린치는 화려하지만 실속없는 사람들의 파티문화에 대한 야유이자 조롱의 상징이다.
그린치를 이해하는 단 한명의 후는 아직 후의 상징이 나타나지 않은 소녀 신디 뿐이다. 신디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다. 어떤 선물도 받고 싶지 않은 만사 심드렁한 이 소녀는 그린치의 심성을 조금은 이해한다.
이 소녀는 대체 먹고 싶은 것이라고는, 갖고 싶은 것이라고는 없는 이 시대 풍족한 어린이들의 상징이다. 물론 결말은 예상하는 그대로이다. 행복한 축제에 그린치가 동참하는 것이다.
'다이하드', '크리스마스의 악몽''배트맨'을 패러디 하거나 연상케 하는 각종 장치는 가면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짐 캐리의 변화무쌍한 표정 연기와 어우려져 시간 보내기에 알맞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수한 내레이션은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맡았다.
1957년 수스박사(본명 데오도르 가이셀)의 원작인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을까'가 원작으로 1966년 만화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다. '분노의 역류' '아폴로13'을 만든 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이다.
▲치킨런
이들의 꿈은 '치킨 런(닭들 도망가다)'이 아니라 '치킨 플라이(닭들 날다)'이다. '대탈주'를 기억한다면, '치킨 런'(Chicken Run)'은 '치킨판 대탈주'이다.
닭이 알을 낳지 못하면 닭고기가 되는 법.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논리이고, 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주인 트위디 여사는 악랄한 지배자임에 틀림없다. 암탉 진저는 탈출을 꿈꾼다.
뜨개질이나 하고 있는, 하염없이 공상이나 하는 주위의 암탉들을 교화해 끊임없이 탈출을 부추긴다. 그러나 "언제 날아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구원의 사자가 나타난다. '고독한 방랑자인 나는 슈퍼 치킨'이다. 미국에서 왔다는 록키는 진저에게 "안녕, 예쁜이(Doll face)!"하는 것이 못마땅하긴 해도 그가 날아다니는 닭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구세주와 도 같은 존재이다.
날아도 그만, 안 날아도 그만 하던 닭들이 목숨을 걸고 날기연습을 하게 된 것은 트위디 여사가 치킨 파이 기계를 농장에 들여 오면서부터다.
이젠 진저가 말하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코 앞에 죽음이 닥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탈주가 예정된 날, 록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닭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선다.
입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특이한 점토 인형극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국 아드만사의 새로운 점토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독특한 '닭들의 반란'이 성인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다.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할리우드 이야기 기법인데도, 유머와 재치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과다 수당과 과다 섹스로 여기에 온 놈"이라고 미군 닭을 욕하는 영국 토박이 수탉의 캐릭터에서 영국의 미국인에 대한 시각이 잘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대개 애니메이션이 완성된 후 목소리를 입히는 데 이 영화는 먼저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래야 그 커다란 입의 움직임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경박하고 허풍 센 미국 닭은 멜 깁슨이, 이상주의자 진저의 목소리는 여배우 줄리아 사왈라가 맡았다.
손바닥만한 점토 인형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움직임은 24프레임이 합쳐져 1초짜리 영상을 만드는 치밀함에 있다. '치킨 런'을 두고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애니메이션은 이제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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