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현상학자의 일기 /엔조 파치 지음, 이찬웅 옮김학계에서는 올해를 현상학 탄생 100주년의 해로 삼는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 현상학에 대한 체계적인 저서 '논리 연구'를 1900년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 현상학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연구되고 있다.
비록 '천의 얼굴을 지닌 프로메테우스'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 난해성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말이다.
'어느 현상학자의 일기'(이후 발행)는 한 이탈리아 현상학자가 후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그는 1956년부터 1961년 사이에 있었던 자신의 일상 체험을 적은 일기를 통해 현상학을 '가능한 한 쉽게' 이야기하고, 모든 현상학의 분파들은 후설의 적자(嫡子)임을 웅변하고 있다. 1950, 60년대 유럽의 현상학 운동을 주도한 그의 이름은 엔조 파치(1911~1976)이다.
저자는 1956년 3월 14일자 첫 일기를 시작하자마자 현상학의 목표와 주요 개념들을 토해낸다. '자신 안에 세계를 가진 인간으로서 나'(구체적 모나드ㆍConcrete Monad), '모든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리잡은 인간'(상호주관성ㆍIntersubjectivity), '진리를 재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의식을 태워 없애야 할 필요성'(에포케ㆍEpoche).. "현상학은 우리의 오류와 자만, 피상성을 깨닫고 삶 속의 진리를 계속해서 경험해나가는 것이다."
현상학을 난해하게 만들었던 '에포케'(판단중지)의 개념은 그가 왜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를 극찬했는지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해변의 묘지'라는 폴 발레리의 시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이 절규야말로 책이나 간접 경험을 통해 세계를 결정지으려는 기존 태도에 대한 '에포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에포케'를 통해 사물의 겉옷을 벗겨냄으로써 사물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살과 뼈를 가진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간접적이다.
그것은 타인의 증언으로서 대신 받아들여지고 용인되는 것이다. 재생산되고 모방된 것(눈 앞에 놓인 것)을 거부하고 우리가 본 것의 이미지만을 표현하려 했던 세잔은 그래서 위대하다."
저자가 일기를 통해 현상학의 후예로 천거한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서 초월적 진리를 향해 나아갔던 장 폴 사르트르가 그랬고, 장편소설 '율리시스'를 통해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만을 말하려 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그랬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기쁨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모험 속에 내던진 생 떽쥐베리도 빼놓지 않았다.
"현상학은 관조가 아니다. 현상학은 끊임없는 자기 단련이며, 사회의 형상을 바꾸는 변형이고, 자기 파괴의 전제이자 구원의 전제이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일으켰던 우리 유럽인이 공동체에 던지는 따가운 비판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진실했다. 그는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했고 진리를 위해 살았다.
김관명기자
kimkwmy@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