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기간 중 민주당으로부터 외교ㆍ안보 정책 수행 능력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언론들도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부시가 외교ㆍ안보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다는 게 공격의 핵심 근거였다.부시도 선거기간 중 인터뷰 등을 통해 외교ㆍ안보 분야의 약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능력있는 참모진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 궁지를 모면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그는 법정공방이 한창이던 지난달 말 정권 인수팀을 가동하면서 외교ㆍ안보팀의 주요 포스트를 미리 발표하는 등 그 어느 분야보다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부시의 외교ㆍ안보팀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쌍두마차 체제로 운영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는 이미 국무장관에 흑인인 콜린 파월(63) 전 합참의장을, 대통령 안보보좌관에 흑인 여성인 콘돌리사 라이스(46) 전 스탠퍼드대 교수를 임명했다. 마치 유색인종의 지지가 높은 민주당의 정권구성을 연상케 한다.
외교ㆍ안보 팀의 또 다른 한 축인 국방장관은 공화당의 간판 외교ㆍ국방 전문가인 폴 월포위츠 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학장과 막판 선거유세에 가세해 공을 세운 존 맥케인 상원의원으로 압축되고 있다.
국방부 차관에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리처드 아미티지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미 언론에서는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이 부통령 당선자가 된 것을 언급하며 "미국 외교ㆍ안보를 '국방부 동문회'가 접수한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흑인 최초로 합참의장에 올랐던 파월은 이번엔 사상 첫 흑인 국무장관으로 발탁되는 '이색'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1991년 걸프전을 통해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전략적 사고와 뚜렷한 소신, 뛰어난 협상력으로 공화당내 국무장관감으로 일찌감치 꼽혀 왔었다.
자메이카 이민 2세인 그는 뉴욕 시립대를 졸업한 뒤 ROTC로 군문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는 합참의장과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3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파월은 강경 보수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공화당내에서 냉전 종식에 따른 군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보스니아ㆍ코소보 등 국지전 개입을 반대하는 등 합리적 중도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스탠퍼드대 부총장 출신인 라이스는 이번 대선에서 외교정책 자문관으로 부시의 외교ㆍ안보팀 구성과 정책을 진두 지휘했다. 구 소련과 동구 전문가로 명성이 높다. 흑인 민권운동의 발원지로 유명한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난 라이스는 15세에 덴버대에 입학, 26세에 소련ㆍ동유럽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무부에서 인턴 근무를 마친 뒤 1981년부터 스탠퍼드대 강단에 섰으며, 행정 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1989년부터 3년 여 동안 국가안보위원회 소련ㆍ동유럽 국장, 대통령 국가안보 특별 보좌관을 지냈다.
1990년대 초 ABC 방송의 시사해설자로 구 소련의 붕괴를 조리있게 설명,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라이스는 미국이 국제문제에 강 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월포위츠는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체니 국방장관 밑에서 차관을 지냈고, 레이건 정부에서는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 그는 국가미사일방어체체(NMD) 구축 등 강경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부시와의 맞붙었던 지난 2월의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의외로 선전했던 맥케인은 해군장교 출신의 베트남 전쟁 영웅이다. 대통령을 노렸던 그가 국방장관직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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