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 고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 원문을 일일이 등사, 독해 수업을 이끌었던 어느 교사가 이제 그 책의 번듯한 완역본을 내놓았다. 서울대 영문학과 이상옥 교수가 옮긴 '기싱의 고백'은 가난 속에서 길어 올린 사색의 샘물이다. 40년 전의 영어 교사는 바로 그이다.헨리 라이크로프트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성찰을 담은 글이다. 19세기 후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치부를 런던에서 부대끼는 가난뱅이 작가 기싱의 붓끝으로 해부한다.
약간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슬픔, 오해, 잔인한 따돌림 등에 대한 현미경적 묘사는 풍요 속의 가난을 아프게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더욱 생생히 다가온다.
그는 그러나 현실 타개를 부르짖지 않는다. 그에게는 상류층에 대한 분노가 곧 하류계급에의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한 성향 때문이다.
19세기말 유럽을 휩쓸던 심미주의 문예 사조의 전형을 성취해낸 작품으로도 평가되고 있을 만큼, 미문으로 꽉찬 글이다. 역문의 유려함 역시 그에 못지않다.
효형출판 발행, 조지 기싱 지음, 이상옥 옮김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