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아오다 법원 판결로 '황혼이혼'을 당한 뒤 몸은 병들고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 한 70대 노인의 인생유전이 눈물겹다.지난해 7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장기간에 걸친 외도와 부인에 대한 폭언ㆍ폭행, 재산을 둘러싼 아들과의 맞고소 등으로 결혼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이혼과 함께 위자료 26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A(78)씨. 최근 지병인 당뇨가 심해져 시력까지 잃었지만 재산은 다 잃고 가족ㆍ친지의 도움마저 끊긴 채 허망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예비역 해병 대령 출신인 A씨의 청춘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명문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60년대초 예편한 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기반으로 부동산업을 시작, 탄탄대로를 달렸다.
100억원대로 늘어난 재산으로 '딴살림'도 차려 봤고 씀씀이 큰 손으로 학교 재단 등에 수십억원을 한꺼번에 기부하기도 했다. 가장의 전횡에 항의하는 아내와 자식을 때론 폭언과 폭행으로 무마시켰지만 A씨에겐 이마저도 '남아의 풍류'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90년대 중반부터. 노령으로 몸이 안좋아지기 시작해 해외에 있던 아들을 불러 사업을 맡겼지만 아들이 대표이사가 되면서 회사 자산을 둘러싼 부자간의 맞고소가 이어졌다.
게다가 50여년에 걸친 설움을 견디다 못해 아들 집으로 이사한 부인 B(76)씨가 이혼소송을 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 신축계약이 파기되면서 A씨 소유의 100억원대 땅이 경매로 넘어가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이런 그에게 아무도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다급한 심정에 도움을 청했던 자식들과 전 부인은 '구원(舊怨)'을 이유로 법원에 '접근금지 신청'을 내는가 하면 전화번호까지 바꿨다.
무연고 환자로 올 초 국립의료원에 입원했지만 자식들이 호적에 남아 있어 취소됐고 몇몇 지인의 도움으로 버텼던 병원에서마저 4개월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A씨는 현재 옛 직장동료와 함께 지방의 한 여관에 투숙해 있다.
"1,000원짜리 한 장이 없어 좋아하는 땅콩도 못 사먹습니다. 이런 게 인생인가 봅니다." A씨는 14일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아가 보겠다"며 짐을 챙겨 여관을 나섰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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