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지식바탕… '문학의 신세계'한국에서만 1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39)는 파리 북부 지역의 자그마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악수를 나누자마자 대뜸 "한국을 사모합니다"라고 말했다. '개미'의 세계적 성공은 한국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업실인 그의 아파트 책상에는 데스크탑 1대와 초소형 노트북 등 4대의 컴퓨터가 한꺼번에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 그가 몰두하고 있다는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비디오카메라와 모니터도 눈에 띄었다. 창 밖으로 센강과 연결된 작은 운하에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도 보였다.
맨발로 작업실을 오가며 천진스러우면서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한 베르베르는 젊은 작가답게 '문학적 상상력+영상의 신세계'를 만들어내려는 꿈에 젖어있는 듯했다.
- 한국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새로운 예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소설가로서
당신이 가진 문학의 새로움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늘 새로운 지식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전에 없던 것을 쓰는 것이다. 가령 올해 발표한 장편 '천사들의 왕국'은 과학과 정신의 문제를 함께 다룬 것이다. 내가 진정 관심있는 것은 새로운 문학의 장르를 '창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철학소설'의 창조이다."
- 기왕의 문학, 좁혀서 프랑스 문학과 당신의 문학이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프랑스 소설들은 영어로 번역이 안된다. 구식이라서 그렇다. 내 작품이 미국에서 번역되어 읽히는 이유는 기존의 프랑스 소설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이 볼 때 프랑스 소설은 자전적, 심리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다. 이것은 독자들을 지겹게 한다.
'개미'가 미국에서도 성공한 것은 한국 독자들이 이 소설을 알아봤고, 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에다가 과학, 철학적 관점, 정신-영성(靈性)을 함께 넣는다. 작업실에서만 쓰지 않고 독자들의 관심을 조사한다."
- 당신은 원래 과학 기자였다. 문학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시선의 개방'이다. 나는 문학을 그 자체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ㆍ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계의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말이다.
나는 늘 소설 속에다 수수께끼를 집어넣어 독자들이 스스로 풀어볼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내는 수수께끼는 독자들의 정신이 닫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 '새로운 세계'라 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 세계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인류의 과제는 네 가지다. 자연과의 조화, 우주와의 조화, 인간공동체의 조화, 인간 개개인 자신과의 조화. 내 소설은 그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개미'는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기 때문에 우리가 죽여도 좋은 존재가 아닌 그 속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이 '개미'이다."
- 기존의 문학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못했나.
"세계가 변했기 때문에 문학이 주는 메시지도 전과 달라야 한다. 인터넷 등이 모든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것을 바꿨다. 여행이 쉬워졌기 때문에 세계관도 바뀌었다. 나는 4대의 컴퓨터로 한꺼번에 작업을 한다.
컴퓨터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빅토르 위고는 컴퓨터로는 자신이 쓴 것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 당신이 대중적 작가라는 비판도 있지 않은가.
"쥘 베른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발표했을 때도 그런 비판을 받았다. 아이들만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야 그의 작품이 좋은 소설이라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쥘 베른는 살아있을 때는 이류 작가 취급을 받았다. 나는 며칠 되면 '쥘 베른상'을 받는다. 그가 보인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많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선호한다."
- 91년 '개미'를 발표한 뒤 10년 동안 7편의 작품을 썼고 이들은 대부분 성공했으며 한국에는 모든 작품이 번역돼있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나는 매일매일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 기록한다. '개미'는 82년부터 매일 4시간씩 써서 완성했다.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문학이 단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시를 쓰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베르베르는 자신의 감독으로 '개미'의 영화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며 한국인과 합작으로 제작하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작업실에 있는 비디오를 틀더니 자신이 최근 제작한 '진주의 여왕'이라는 20분 정도 되는 단편영화를 보여준다.
일종의 뮤직비디오인데, 만화 같은 환상적 스토리와 영상이 그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는듯했다. 그는 "요즘도 거의 매일 한국의 애독자들과 인터넷을 통해 채팅을 하거나, 메일을 받는다"며 자신의 신작 '천사들의 제국'도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7번째 소설 '천사들의 제국'
베르베르가 올해 4월 발표한 '천사들의 제국'은 프랑스에서 지금까지 25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그의 일곱번째 소설로, 다른 작품들처럼 한국어 번역(전2권ㆍ열린책들 발행)은 세계에서 두번째일 정도로 빠르다.
'천사들의 제국'도 '개미'나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에서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전작들이 인간 근원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 질문을 던졌다면, '천사들의 제국'은 거꾸로 위에서부터, 사후세계를 거쳐 천국의 눈을 통해 인간의 삶을 묻는 소설이다.
최초로 저승을 탐사했던 타나토노트 중의 한 사람인 주인공 미카엘 팽송은 그가 사는 건물에 난데없이 비행기가 추락함으로써 죽음을 맞는다. 이제 탐사자로서가 아니라 사자(死者)로 영계에 올라간 미카엘은 천사들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심판을 거쳐 수호천사가 된 그는 지상의 인간 3명을 선택해 그들의 자유의지를 거스르지 않는 간접적 방식으로, 영혼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임무를 가진다.
그는 프랑스인, 러시아인, 미국인 각 1명을 선택하여 이들과 파란만장한 삶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줄거리다.
소설의 중간중간에 삽입된 현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에 대한 글들은 베르베르의 철학적 숙고를 드러낸다. 죽은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가 등장하는등 그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