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4차 장관급 회담 첫 공식회의에서 양측은 장충식 한적 총재에 대한 북측 비난,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당시 발생한 북측의 남측 기자에 대한 활동제한 등을 둘러싸고 기싸움을 벌렸다. 전날 남북 수석대표간 환담에 이은 두번째 신경전이다.최근 대북정책에 대한 곱지않은 여론을 감안한 남측 대표단은 그 동안 불거졌던 고질적인 문제를 이번에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모처럼 할 말은 하겠다는 자세였다.
○-- 남측 수석대표인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오전 10시 시작된 첫 회의 공개 환담에서 인사를 주고받은 후 감슴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박장관은 "6·15 공동선언 이행 과정에서 자그마한 우여곡절은 있었다. 자그마한 것에 너무 집착하면 큰것을 잃는다"고 말했다.
장총재에 대한 비난은 내정간섭이고, 남측 취재기자 활동제한은 남북사업 당사자의 신변안전을 위협한다는 메시지를 전금철 북측 단장에게 전한 것이다. 그는 이어 "작은 것을 너무 오래 간직하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약속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며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에 전 단장은 "작은 것은 별 상관없다는 말에 동감하지만 공동선언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일은 없어야한다. 원칙을 똑바로 지키는데 유의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호의 양보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러자 박 장관은 "개인이 사견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당국 입장만 제대로 정리하면 되지 사견에 일일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며 대승적인 자세를 재차 촉구했다.
○-- 공개대화에 이어 오전 11시 45분까지 진행된 본 회의에서 박 장관은 장 총재 비난에 대한 남측의 입장을 공식 전달하고, 취재기자 활동 제한에 대한 재발방지를 강력 촉구했다. 반면 전 단장은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남측 국방백서를 거론하며 맞받아 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남측은 "향후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지면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양측 대표단은 무거운 표정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전 단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며 퉁명스럽게 답했고, 박장관도 "오후에 지켜보자"며 즉답을 피했다.
○-- 종종 한자 성어로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혀온 전 단장은 이날 "(김정일) 장군님께서 선배를 모시고 '노당익장(老當益將)'해왔다"고 말했다. 전 단장은 "노당익장은 늙을수록 혈기왕성하게 일한다는 뜻"이라며 "6·15 공동선언의 이행이라는 중책이 있어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노당익장은 남쪽에서 흔히 쓰이는 노익장과 같은 뜻이다.
○-- 공식회의 후 남측 대표단은 오후에 평양 청춘거리 체육촌에 있는 태권도 전당을 방문하고 평양교예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으며, 저녁에는 고려호텔에서 북측 대표단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평양=공동취재단
입력시간 2000/12/1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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