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노동시장의 구직난은 심각한데, 공항은 해외여행객으로 만원이라고 한다. 생필품 구하기조차 어려운 최빈계층은 많아지는데, 사치품 시장은 여전히 호황이라고 한다. 경제가 침체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다.더욱 우울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격차를 더 벌리고, 승자만 살아남는 시장경쟁이 추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다.
어디 이것뿐인가. 계층간은 물론이고 국가와 기업간에도 엄청난 격차가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 양극화'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라고 해도 지나친 빈부의 격차는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적 불안요인을 형성해 국민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능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가 이상적일 수도 없다. 그것은 이미 사회주의에서 검증된 역사적 유물이 아닌가. 따라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불균형을 억제할 수 있는 적절한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다.
조세제도는 물론 사회후생과 복지제도를 확충하여 어려운 계층을 보호해주는 제도가 확립되어야만 한다. 이와 함께 기존에 형성된 상류층의 부(富)가 사회발전을 위해 건전하게 환류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형평의 왜곡을 억제하는 안정장치가 미흡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형평지향적인 정서에 밀려 왜곡된 부(富)가 사회발전을 위해 선순환될 수 있는 제도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동질성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는 나 배고픈 것은 참아도, 남 배부른 것은 못 참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나 생산적인 기여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형평을 강조하는 국민의식이 결과적으로는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거래가 투명하지 않았던 시절을 상기하면,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균형의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사회적 위화감이나 형평만을 내세우지 말고, 부유층의 자산이 국내에서 환류될 수 있는 제도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 지금은 개방화 시대가 아닌가. 국내제도가 폐쇄적이면 해외 유출의 유혹은 그만큼 더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예금부분보장제와 외환거래의 자유화, 금융종합과세가 동시에 실시된다.
자본의 해외유출을 걱정하여 자유화를 연기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연기한다고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자유롭게 환류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싼 외자도 유치하는데, 국내자금도 제도권에 머물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면세채권이라도 발행하여 공적자금과 실업대책으로 사용해야 한다. 면세혜택만큼 국민경제에 기여하기 때문에 특혜만 주는 것도 아니다.
기여입학제도 정원 외로 운영하고, 기금을 장학금이나 소외계층을 위해 엄격하게 활용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경제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혜택받는 사람은 많지만 피해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제도가 없는 국내대학을 외면하고,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부유층도 많지 않은가.
글로벌 경제에서는 사회적 불균형도 열린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형평지상주의에 밀려 국내에서 국부(國富)가 환류되지 못한다면, 그 부는 열린 문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오히려 불균등을 심화시킨다.
정갑영ㆍ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시간 2000/12/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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