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입니다." "용기있는 사람에게 원서를 써줘야지요."수험생, 학부모와 일선고교, 그리고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들이 모두 우왕좌왕이다.
2001학년도 대입 수능시험 성적 발표 결과 고득점 동점자가 대거 발생, 변별력이 실종됨에 따라 입시 사상 유례없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수험생들은 "이 점수대로 어느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냐"며 머리를 싸매고 있고 대학 관계자들도 "대부분이 점수가 비슷한 데 무슨 기준으로 선발해야 하느냐"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수험생ㆍ학부모 대혼란
12일 수능 성적표를 받아본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지 못해 '수능 패닉(panic)'현상을 겪고 있다.
서울 예일여고 이모(18)양은 "중상위권인 내 점수에 학생들이 대거 몰려 하향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무척 혼란스럽다"고 말했고 재수생 강모(19)군은 "지난해도 쉬운 수능 때문에 손해를 봤는데 이번에도 원하는 대학에 원서도 내지 못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학부모들은 성적이 발표되자 마자 진학담당 교사에게로 달려갔다. 학부모 조정란(趙晶蘭ㆍ47ㆍ여)씨는 "수능 직후 발표된 각종 자료를 보고 4년제 대학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 데 오늘 발표를 보니 앞이 깜깜하다"고 불안해 했다.
재수생 아들을 둔 오정숙(吳貞淑ㆍ48ㆍ여ㆍ서울 송파구 오륜동)씨는 "전과목에서 4개만 틀리고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시험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선고교 진학지도 혼선
대부분 고교는 입시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하루종일 대책회의를 거듭했다. 진학담당 교사들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예년처럼 퍼센트로 잘라 지원할 지, 새 기준을 마련할 지 종잡을 수가 없다"면서 "학부모들의 문의전화에 우리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복고 진학담당 이모(48)교사는 "수능의 변별력이 없어지면서 상위 10%이내 학생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도대체 내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하향안정지원을 유도할 지, 소신지원을 시킬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중앙고 3학년 담임 한찬조(韓贊祚ㆍ53)교사는 "평소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과는 무관하게 뒤죽박죽으로 점수가 나왔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과학고 김덕헌(金德憲ㆍ37)교사는 "수능 변별력이 사라지면서 내신이 불리한 특목고는 진학지도에 가장 큰 애로를 겪고 있다"며 "객관적 기준보다는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있느냐'는 판단으로 대학을 선택할 판"이라고 말했다.
◆대학도 선발기준 고심
각 대학 입시 실무자들은 동점자 처리 기준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서울대는 고득점자가 급격히 늘어난 데 당혹해 하면서 5단계였던 동점자 처리 단계를 8단계로 늘리는 한편, 연령 등 말썽의 소지가 있는 기준은 제외키로 했다.
주요 사립대학들도 고득점자들의 하향지원으로 수험생간 소수점 이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사정기준 세분화 등 선발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서강대 서준호(徐遵鎬) 입학처장도 "면접이나 논술만 가지고 합격했다는 뒷얘기가 나올까봐 선발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제2외국어,4명중 1명 만점
올 수능에선 66명이 400점 만점을 받아 사상 유례없는 만점 풍년이었다. 1994학년도 수능시험이 시행된 이래 만점자는 99학년도 1명, 2000학년 1명 등 7년을 통틀어 2명에 불과했으므로 이번 시험이 얼마나 갑자기 쉬워졌는 지 알 수 있다.
영역별로는 아예 '만점 사태'였다. 언어영역에서는 지난해 10명에 불과했던 만점자가 5,580명이나 쏟아져 550배 이상 늘어났다. 신설된 제2외국어 영역은 응시자 26만2,711명의 22.6%인 5만9,370명이 문제를 모두 맞혔다. 응시자 4명 중 1명 가까이가 만점을 얻는 '이상한' 시험이었다.
만점자는 재학생(39명)이 재수생(21명)보다, 남학생(47명)이 여학생(19명)보다, 인문계(42명)가 자연계(24명)보다 많았다.
문제가 쉬웠지만 0점을 받은 수험생도 27명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04명에 비해선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0점자는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고 백지 답안을 내거나 전과목에 응시했으나 1~2문항만 체크하고 답안지를 제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전영역 260문항을 모두 체크하고 0점을 받을 확률은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역별 0점자는 언어 59명, 수리탐구? 217명, 수리탐구Ⅱ 36명, 외국어영역 24명, 제2외국어영역 9명으로 모두 345명이었다. 수리탐구?에선 30문항을 모두 체크하고도 상당수가 0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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