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대형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대형 우량은행간 합병이 거론되고 있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을 정부주도의 금융지주회사방식을 통해 대형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은행의 구조조정, 대형화 그리고 경쟁력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먼저 은행의 덩치키우기와 은행경쟁력 향상과의 관계이다.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은행이 대형화한다면 그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과거에 비해 상승할 수도 있고 이에 따라 은행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 이외에는 대형화한 은행의 경쟁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원천을 찾기는 어렵다. 비슷한 종류의 은행끼리 중복되는 인원을 정리하고 전산화투자에 소요되는 자금을 절감한다는 차원에서의 은행합병은 현행 제도나 경영환경 하에서는 오히려 장단기적 부작용이 더욱 클 수도 있다.
둘째 은행대형화의 방안으로 이용될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 방식의 문제이다. 격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 중에서도 은행산업의 경영환경은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부문 중 하나이다.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항상 뒷북치기 일쑤이던 정부가 이러한 경영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은행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유능한 경영인을 선임하여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각 부분별로 특화한 자회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관행으로 볼 때 금융지주회사가 정부의 낙하산인사의 착륙장으로 활용될 것이며 살아 숨쉬는 기업조직이기보다는 공기업적 성격이 물씬 풍겨나는 회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부실한 은행들을 한 군데에 집합시키면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다.
셋째 은행 대형화나 구조조정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업금융부문의 소외 현상이다. 은행의 1차적인 기능은 자금의 흑자주체인 가계로부터 자금을 수집하여 생산활동의 주체인 기업에게 투자하고 또한 투자된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합병대상으로 거론되는 우량은행들은 대개 가계로부터 수집된 자금을 다시 가계 및 가계유사부문에 투자하는 소매금융 전문은행들이다. 실제로 은행합병이나 대형화가 보다 필요한 부문은 소매금융 중심 은행이라기보다는 기업금융 중심 은행이다.
또한 지금 추진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기업금융부문이 강화된 경쟁력 있는 은행이 필요하다.
은행구조조정의 기본 접근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일정 시점까지 하드웨어를 개혁하고 뒤이어 소프트웨어를 개혁한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를 먼저 개혁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드웨어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혁은 정부의 은행경영개입을 금지하고 은행경영의 책임주체를 확립하는 방안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다양한 상품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은행의 투자심사를 강화하게 하는 유인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은행들이 합병이든 금융지주회사든 스스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채택할 수 있도록 각종 법적 제도적 비용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개혁을 통해 은행시장의 경쟁원리를 강화하고 책임있는 경영주체로 하여금 은행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해야 한다.
하드웨어에 대한 선택은 이들의 몫이지 정부의 몫이 아니다. 진정한 책임경영주체가 자체의 판단으로 합병을 도모하거나 대형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은행경영에 최종적인 책임이나 개입권한이 없는 주체가 추진하는 하드웨어 중시의 구조조정은 결국 결과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는,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허한 개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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