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대권의 향배를 결정하게 될 플로리다주 수작업 재검표에 대한 역사적인 판결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연방 대법원 판사 9명은 11일 오전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 측 변호인들로부터 구두변론을 들은 후 이날 밤 늦게까지 격론을 주고받으며 심리를 계속했으나 좀체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초점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지난 8일 논란표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를 재개하도록 한 판결이 과연 법원의 권한을 벗어난 월권행위인지 여부. 판사들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두 후보 측 변호인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퍼부었으나 보수와 진보라는 각각의 성향에 따른 입장 차이만을 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스티븐 브레이어, 존 폴 스티븐스, 데이비드 수터 등 진보 성향의 판사들은 "재검표를 하지 않는다면 기준이 있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등 양측 변호인들에게 재검표 기준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집요하게 계속, 고어 후보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또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앤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자동 기계개표기가 의사가 불분명한 표(undervote)를 읽기를 거부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 당신(부시)측 주장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등 마치 공화당 진영에 가담한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비춰졌다.
캐스팅 보트를 쥔 앤서니 케네디 판사와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도 질문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케네디 판사는 부시 후보측에 "연방의 관할권이 어디까지라고 보느냐", 고어 후보측에게는 "주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를 허용함으로써 기존 법을 새로 쓴 게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오코너 판사는 "주 대법원이 주 의회의 선택을 특별히 존중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두 판사의 발언을 놓고도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9일 5 대 4로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을 뒤엎고 수작업 재검표 중지명령을 내릴 당시 부시 후보측에 섰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해석도 있고, 아직 두 판사들이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석도 있다.
또 이날 심리의 전체적인 기조로 볼 때 판사들이 아직도 만장일치, 또는 최소한 압도적 다수 의견을 도출하기 위해 절충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이날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지난달 21일 선거결과 인증시한 연장 결정이 주의 법률에 따른 것이라고 석명한 것도 연방 대법원 판사들의 판단을 어렵게 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방 대법원이 최종 판결에서 수작업 재검표는 불법이라는 부시 후보측의 주장을 수용할 경우 고어 후보측은 더 이상 손을 쓸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수작업 재검표를 허용, 고어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경우 12일의 선거인단 선출 마감시한의 유효성에 대한 공방, 수작업 재검표의 구체적인 기준 설정 문제, 공화당이 다수인 주 의회의 독자적인 선거인단 지명 추진 등으로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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