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재판부의 판결을 끝으로 막을 내린 '여성 국제 전범 법정'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 상징적 시민법정이지만 시민단체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일본 정부에 어느때보다 커다란 압박을 가했다.이날 재판부가 히로히토(裕仁) 천황과 일본 정부의 범죄를 조목조목 따지며 판결문 요지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장내를 가득 메운 각국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여성ㆍ인권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몰려 든 각국의 보도진들도 실행위원회와 각국 관계자, 검사ㆍ판사 역할을 맡은 전문가들을 취재하기에 바빴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 윤정옥(尹貞玉) 공동대표는 "정의는 살아있음을 확인했다"면서 "할머니들의 존엄성이 온세상에 선포됐다"고 평가했다. 또 '전시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 네트워크'의 마쓰이 야요리(松井耶依) 대표는 "피해자들의 용기가 오늘의 역사적 장면을 만들었다"며 "우리 모두는 역사의 증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제법정은 70여명의 각국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참석하고 유고전범재판장을 맡았던 가브리엘 맥도널드 등 국제적 명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규모와 내용면에서 그동안의 군대위안부 관련 행사를 압도했다.
또 여기에 피해국을 비롯한 각국의 여성ㆍ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들어 뜨거운 연대를 과시함으로써 유엔 인권위 보고서 등과는 다른 차원의 생생한 주장을 쏟아냈다.
이번 법정만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최근 일본 법원이 군대위안부 동원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행위원회는 내년 3월8일의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판결문 전체를 정리해 발표하는 등 국제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추가 행동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런 국제여론의 압력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한편 남북한이 공동으로 기소장을 작성하고 재판부가 남북한 기소장의 논리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성과를 올림으로써 민간차원 남북 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도 평가해야 한다.
■판결문 요지
'여성 국제 전범 법정' 헌장에 의거, 구 일본군의 성노예제도에 대한 일본 정부 및 그 군대의 책임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재판부는 강제적인 성노동 행위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군대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사실이 명백하다. 또 히로히토(裕仁) 천황은 군의 최고통수권자로서 1937년 난징(南京) 대학살과 강간 사건을 통해 위안소 설치와 운영 등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알고 있었다.
천황은 이런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따라서 그는 헌장 제3조 개인의 형사책임 규정에 따라 유죄이다.
일본 정부도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대만 등이 당시 식민지였기 때문에 국제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도에 대한 범죄는 어떤 사람도 보호의 대상이 된다. 일본 정부는 또 스스로가 비준한 1921년 인신매매 금지조약과 1930년 국제노동기구(ILO)조약이 규정한 의무를 위반했다.
또 성 및 인종 차별을 금지한 1907년 헤이그조약도 위반했다. 조선ㆍ대만 총독을 비롯한 일본 정부 관리와 대리인ㆍ고용인 등의 불법행위는 일본 정부의 대리로서 자행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 전후 피해자들을 자국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유기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는 법정의 초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등 국제법에 의한 정의를 무시ㆍ거부하고 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에 범죄에 대한 책임과 손해배상이 불가피함을 밝힌다. 히로히토 천황은 유죄이다. 일본 정부도 당시의 군고위 관계자 등 기소된 피고들과 함께 유죄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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