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MSNBC 특집보도"아시아 경제는 1997년 환란 당시와 너무나 흡사히다."
미국 MSNBC 방송은 11일 특집기사를 통해 "현재의 아시아 경제가 3년 전 태국을 시작으로 퍼져나간 금융위기 당시와 똑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 방송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국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는 대외적 환경 정도일 것" 이라고 말해 아시아 각국이 처한 위기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위기의 원인은 '연줄주의' '도덕적 해이' '정치불안' 등으로 대표되던 당시와 흡사하다.
개혁을 가로막는 정치적 마비증세가 여전하고, 은행의 부실채권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으며, 파업, 인종갈등 등 사회불안이 혼란을 틈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제 2 금융위기론' 의 요지이다.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탄핵여부를 놓고 정쟁이 격화하고 있는 필리핀은 국론이 양분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거의 연일 계속되자 외국 자본이 이탈, 통화가치가 폭락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분리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이 내전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지만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무기력과 위기불감증은 환란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한국은 높아진 국제적 위상과 달리 국내적으로는 정부 개혁정책에 대한 노조의 강경대립과 지지부진한 민영화로 경제재건의 발목이 잡힌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치ㆍ사회적 상황과 별개로 내년 아시아 경제 위기의 근거로 불안정한 국제유가, 미국의 경기침체, 외국 자본 이탈에 따른 주식시장 냉각 등을 꼽고 있다.
유가는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상쇄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 경제의 축소에 따른 여파이다. 특히 가전제품, 컴퓨터 칩 등에서 미국 시장 수출 의존도가 심한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 등이 미국 경제 여파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미국 경제는 짧지만 심각한 경기침체(recession)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 60% 를 웃돌고 있다. 첨단 산업이 밀집해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도 닷컴기업의 잇단 부도와 주식시장 냉각으로 하강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측됐다.
견고한 생산성으로 경기침체는 내년 1년 정도로 끝나고 2002년에는 다시 강력히 반등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지만 한 해동안 얼마만큼 성공적인 연착륙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느냐가 이런 전망의 전제 조건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 따르면 미국의 내년 GDP 성장률은 지난 9년 반 동안의 평균 성장률인 3.7%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1% 에 그쳤다. 한편에서는 유가인상에 따른 국제 원자재값 상승, 다른 한편에서는 미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시장 감소가 한국과 같은 공업국이 겪어야 하는 이중고이다.
올해 여전히 높게 나타난 GDP 성장률이 유일한 위안이지만 이나마 경제위기감을 지울 수 있는 지표는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을 비롯한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은 올해 GDP 성장률이 6%대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환란 직전인 1996년, 1997년 초에도 아시아 각국은 똑 같이 두 자리대의 높은 GDP 성장을 기록했다. 주식,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환란이 시작되자 GDP 성장률은 다음해 마이너스 10%대로 주저앉았다. 성장률은 환란에 따라 얼마든지 폭락할 수 있지만, 성장세가 환란방지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실례로 입증된 셈이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예외적으로 중국만이 금융위기의 여파를 피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시장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스템과 규제경제를 성공적으로 개혁한 것으로 평가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임박하면서 아시아 시장을 탈출한 외국 자본의 좋은 투자처로 떠오르는 추세다. 엄청난 시장규모, 달러와 연동된 안정된 통화가치도 매력중의 하나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의 나빠진 경제환경, 외국 자본의 극심한 유동성이 아시아 각국이 3년 전 보다 위기를 극복하는데 더 어렵게 하는 요인" 이라며 "정치적 안정이 경제개혁의 첫 단추" 라고 지적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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