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때 이회창후보측 北에 판문점총격요청說총풍사건은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측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북한측에 판문점 내에서의 총격시위를 요청했다가 무위에 그쳤다는 검찰의 충격적인 발표로부터 불거졌다.
실제로 오정은, 장석중, 한성기씨 등 총풍 3인방은 97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옥수수 박사 김순권씨 방북을 대가로 선거 판세를 뒤집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측이 총격요청 사실을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받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일부 정치지망생들의 해프닝성 사건으로 야당 탄압을 한다"며 극렬 반발했고, 검찰은 이 후보 동생 회성씨까지 조사했으나 배후 관련은 계속 수사하겠다는 미완의 수사결과만 발표했다.
이후 오씨 등이 검찰 및 재판과정에서 고문수사 의혹을 제기하면서 안기부 진술을 뒤엎는 바람에 2년간 지루한 법정다툼을 벌여왔다.
고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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