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수영문학상.동서문학상 수상 시인 송찬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수영문학상.동서문학상 수상 시인 송찬호

입력
2000.12.12 00:00
0 0

아름다운 말로 펼쳐진 살만한 땅을 찾아송찬호(宋燦鎬ㆍ41)는 과작의 시인이다. 눌언(訥言)의 충청도 사람이다. 등단 후 14년 동안 낸 시집이 3권, 한 시인의 시작이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그는 올 2월 초 세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낸 이후 아직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송씨는 이 시집으로 최근 권위 있는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한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문학상이란 것이 시인의 우열을 가르는 일이라기보다는 "고단한 문학적 여정에 건네는 물 한 그릇 같은 거"라면, 송씨 만큼 이 물 한 그릇이 건네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달디달게 느껴질 시인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상식 참석차 서울에 온 송씨를 만났다. 그는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충북 보은군에 살고 있다. 서울 나들이를 하는 것은 시집이 나오거나 이번처럼 문학상을 받는 예외적 경우뿐, 일년에 한두 번 정도이다. 나머지 그의 시간은 온전히 시를 생각하는 일에 바쳐진다.

얼마 전까지 목장에서 하던 노동 일도 그만두었다. "왜 세번째 시집 이후 한 편도 발표 안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그는 "그냥 시가 너무 엉성해지는 것 같아서."라고 느린 말투로 겸양을 보였다.

수상작 '붉은 눈, 동백'은 그가 '10년 동안의 빈 의자' 이후 6년만에 묶은 시집이다. '인가와 저잣거리를 헤매며 나는 묻는다 살 만한 땅은 어디를 가야 하는가/어두운 경전의 숲을 더듬으며 나는 또 묻는다 아름다운 문자의 땅, 산경(山經)은 어디인가'(

에서). 이 시구처럼 그는 '살만한 땅'과 '아름다운 문자의 땅'을 찾는 시인이다.

'산경'은 그가 중국 고대신화서 '산해경(山海經)'의 불멸불사의 세계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 땅들을 찾는 단서가 되는 말이다.

'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 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 손 안에 촛불이 켜졌다/./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 뿐, 어느 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

에서). 송씨는 가난한 체험에서 비롯된 사회학적 관심과 함께 언어에 대한 탐구를 자신의 커다란 시적 주제로 삼아왔다.

그가 '빵에 대하여'란 다른 시에서 보여주었던 '헐벗음'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 다시 떨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람에게, 절절한 이미지로 와 닿는다.

'마지막 성냥을 켰습니다 방이었습니다/옷 몇 가지로 불빛을 가린 작은 방이었습니다/한 여자가 웅크리고 누워 있었습니다/품속 깊이 자궁 하나 묻고 한 여자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난에 성욕마저 빼앗긴 추운 밤이었습니다/허기로 몸 일으켜 세우고/ 마지막 성냥을 켜들고/ 깊은 밤 한 여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서).

'마지막 성냥'을 켜드는 이 남자처럼, 그의 시에 어두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붉은 눈, 동백'은 송씨가 '동백'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해서 현실과 언어(문자)의 간난을 헤쳐나가려 한 치열한 사유의 흔적이다. "동백의 붉은 색은 삿된 것을 쫓는 축사(逐邪)의 기운이기도 합니다.

동백은 꽃이 질 때 모가지가 툭, 툭 부러져 꽃째로 떨어지지요. 그 비장한 모습은 엄숙한 이상(理想)이기도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송씨는 '동백이 활짝'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문장의 완성이 시인의 일이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역사와 시대의 부패는 곧 말의 부패이고, 말의 부패는 시인의 부채"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