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아주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조기 극복한 저력은 어디 갔는지 경제 체력이 갈수록 떨어져 가고만 있다. 국내외 경제예측기관의 내년도 한국경제전망이 한결같이 비관적이다. 기업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의 체감지수는 더 차갑다. 제2의 IMF체제가 왔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왜 일까.경제예측은 곧잘 일기예보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경제예측과 일기예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여러 개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비(非)계량적 변수의 작용이다. 일기예보의 변수는 대부분 계량화가 가능하다. 일기예보는 예측만 정확하면 100% 적중한다.
그러나 경제예측은 정확한 예측도 어렵지만 정확한 예측을 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계량화할 수 없는 결정적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 변수는 경제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도 계량화가 불가능하여 경제전망에 반영할 수 없다.
내년도 경제전망과 관련한 계량적 변수는 단순하다. 대외적인 악재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경기추락) 가능성, 국제유가불안, 동남아 및 중남미의 금융위기 등이다.
대내적인 악재는 수출부진, 수입증가, 금융런蓚?구조조정 미흡, 내수경기 냉각 등이 꼽힌다.
경제예측기관들은 이 같은 계량적 변수들을 기반으로 전망을 내놓는다. 정치나 노사문제는 등 비계량적 변수는 제외된다. 선진국 경제일수록 계량적 변수의 비중이 크다. 그 만큼 예측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후진국일수록 비계량적 비중이 높다.
2001년의 한국경제 전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계량적 변수는 뭐니 뭐니 해도 정국안정 의 여부다. 여소야대를 골간으로 한 현재의 불안한 정국구도에서는 '좋은 경제'를 기대할 수 없다. 여대야소가 반드시 좋은 경제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여소야대는 거의 대부분 '나쁜 경제'를 초래한다.
미국만이 유일한 예외라고 한다. 유럽이나 일본 등의 경우 연립내각을 구성해서라도 야대구조를 극복한다. 1997년 아시아를 강타한 혹독한 환란태풍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던 대만이 여소야대로 바뀌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한 것은 예사일이 아니다.
전경련은 최근 시국선언문을 발표,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초당적인 협력체제를 이루도록 정치권에 주문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 동안 금기시해 왔던 정치발언을 했겠는가.
경제인들은 얘기한다. 여소야대 극복을 통한 정국안정방안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대통령이 탈당하여 정치권의 여야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리든지, 과감한 정계개편을 추진하든지, 여야가 대승적 차원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든지..
마케팅 용어에 '얼음장 깨기(Ice Breaking)'라는 말이 있다. 사방 팔방이 두꺼운 얼음으로 둘러 쌓여 있는 형국이라면 얼음이 녹도록 기다리지 말고 망치로 얼음장을 깨버리는 전략이다.
한국경제(민생)가 두꺼운 얼음장 속에 갇혀 있다. 얼음이 자연스럽게 녹도록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자칫 얼음장 속의 경제가 동사(凍死)할지도 모를 형국이다. 얼음장을 깨야 할 시점이다. IMF체제에서는 비계량적 변수가 경제회복의 호재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경제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역시 정치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불안한데도 경제가 잘 된 예는 없다. 정국안정은 좋은 경제 만들기의 기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연말에 국정쇄신방안을 발표키로 했다. 얼음장을 과감하게 깨버리는 획기적인 쇄신책을 기대해 본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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