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과 10월에 이어 다시 12월 7일까지 진행된 미국과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협상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8월 10일 헤럴드 트리뷴은 "한국민이 원하는 것은 미군 철수가 아니라, 최소한 독일과 일본의 수준으로 협정을 개정해달라는 요구"라는 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우리 정서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구체적으로 형사재판관할권이나 환경훼손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 점령군으로 주둔한 독일과 일본에서보다 협정은 훨씬 불리한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SOFA 개정을 우리의 요구대로 관철시키는 일은 한국민의 주권과 자율성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인권운동이 될 것이다.
그러나 SOFA 개정문제가 거론되면서도, 미군주둔과 함께 여성들이 겪는 인권침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임신한 여교사에 대한 성폭행 사건, 자궁에 콜라 병이 박힌 채 무참히 살해된 윤금이 사건, 대구 초등학생 38명에 대한 성추행 사건, 미군에 의해 살해된 증거들이 거의 확실하지만 범인조차 밝히지 못한 기지촌 여성들의 억울한 죽음들. 어디 그 뿐인가.
매향리 폭격장 주변의 임산모들은 폭격소음으로 유산율이 높고 어린 아기들은 잦은 경기를 보이고 있고 청소년들은 포악한 문제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외에도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아동의 상황은 더욱 비참하다.
많은 기지촌여성들은 미군들의 폭행이나 강간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있으나, 불평등한 형사재판관할권 조항으로 미군 가해자에 대한 적법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기지촌 주변에는 미군 아버지의 정서적ㆍ경제적 지원없이 버림받은 채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는 1000여명의 혼혈아동들이 있다. 특히 흑인 외모를 지닌 아동의 경우에는 심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대한 다양한 조치들, 특히 미국 입국시에 특별한 지원책이 미군 당국에 의해 마련될 필요도 있다.
그래서 한국여성단체연합,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새움터 등의 여성운동단체들은 SOFA 개정협상에 즈음하여 여성인권조항을 첨가하기 위한 청원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여성과 아동의 인권보호조항을 신설하고 미군과 그 군속에 대한 성교육과 인권교육을 의무화하며 혼혈아동의 친부 확인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친부에게 양육비를 부담하게 하는 조치를 신설하는 한편 미군기지 내에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권과 인권보호를 위한 조항을 신설하고, 미군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성들은 모성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과다한 방위비를 분담시키는 주둔경비특별협정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이 맺고 있는 SOFA의 첨부각서 11조와 12조에는 '미국 군대는 미군과 독일여성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동들을 양육하기 위한 비용을 지원하거나 그 지원을 권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 각서는 '독일 당국이 사생아들의 부양을 위하여 생부를 찾으려 할 때 미국은 이를 지원한다'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바로 이런 여성과 아동인권조항들이 향후 다시 재개될 SOFA협상에서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
아직도 미군기지 주변에서는 1만명의 한국인 여성과 2,000명의 외국인 여성들이 매춘업소에 종사하고 있다.
SOFA 개정은 거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 여성들에 대한 보호 외에도 여성을 배려하는 평화문화의 조성, 나아가서는 주권국가로서 한국의 체통을 지키는 과정의 일환이기에 국민 모두의 관심과 시민사회운동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현백ㆍ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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