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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의 소설월평/김인숙.공지영.신경숙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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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의 소설월평/김인숙.공지영.신경숙의 소설

입력
2000.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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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목전에둔 방황 무르익음으로 가는 길인가나이 사십을 불혹이라 했다.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다. 그정도 살았으면 더 이상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세명의 소설가가 있다. 김인숙 공지영 신경숙. 모두 나름대로 성공한 소설가들이다.

이십대 초반 이미 '소설가'였으며 이십대 후반 그들의 소설은 그 시대의 젊음을 대표했다. 삼십대 초반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스스로를 알리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으며 사십을 목전에 둔 지금 그들은 오늘의 한국 문학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게 다'일까? 초근 계간지에 발표된 그들의 작품을 보자 김인숙의 '칼에 찔린 자국'(창작과 비평 2000년 가을호)은 8년을 시간강사로 전전하다 드디어 국립대학 교수가 된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5남매의 장남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아이의 아비인 이 사내는 오로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오다 어느 날 돌연 길을 잃었다.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진 것이다. 자신을 증명할 방도라곤 다만 스스로 그러하다고 믿는 환상 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공지영의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21세기문학 2000년 겨울호) 역시 또 다른 혼돈의 기록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여동생 '최인향'이라 믿고 있는 중년 여자의 확신 앞에서 소설가 '공지영'은 정체성을 흔들리는 위기를 맛본다.

이제까지 확고하다고 믿고 있던 온갖 사실들이 정체불명의 한 여인의 출현으로 한갓 허구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묻는다. 나는 공지영인가 , 최인향인가.

신경숙의 '부석사-국도에서'(창작과비평 2000 겨울호)에는 누군가 배반당한 두 남녀가 나온다. '여자'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 옛애인 때문에 여전히 고통스럽고 '남자'는 믿었던 직장동료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배반을 당한다.

소설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 남녀가 어떻게 부석사로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내부로의 여행임과 동시에 타인에게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연인가? 세작가 모두 '불혹' 앞에서 '흔들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한때는 이념을 , 또 한때는 사랑을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었던가.

이제까지의 그들의 소설은 이 상실에 관한 정직한 기록이었다. 그것은 또한 한시대, 한세대 성숙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지금 그들은 어디에 와 있는가?

김인숙은 '칼에 찔린 자국'이 어느 누구의 가해가 아니라 자해였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공지영은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신경숙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여행을 축복한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국도에 버려진 두 남녀에게 내리는 눈송이 서로 떨어져 붙어있는 '부석(浮石)'처럼 두 사람을 하나로 감싸안는다.

'흔들림'과 '길잃음'은 여전히 그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되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길 잃었으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이른 진정한 '어른됨'이란 아마도 이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신수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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