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노벨상 시상식 이모저모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0일 밤 9시(현지 시간 오후 1시)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된 오슬로 시청의 메인 홀에 들어서는 순간, 장내에 있던 1,100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했다. 그리고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는 김 대통령이 메인 홀을 가로질러 단상 오른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됐다. 이때 부터 1시간15분 동안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시상식장 2층 계단에 있던 병사 2명이 팡파르를 울렸고 노르웨이 바이올리니스트 바레트 두에와 비올라 연주가 정순미씨 부부가 잔잔하고 서정적인 기악곡 '렌토'를 연주했다.
노벨위원회의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과 군나르 요한 스톨셋 부위원장의 정중한 안내를 받은 김 대통령은 단상에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참석자들의 축하 박수에 답했다.
김 대통령이 자리에 앉은 뒤 곧바로 하랄드 5세 국왕이 입장했다. 하랄드 국왕은 단상이 아닌 단하의 맨 앞에 별도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대한 국왕의 예우라는 게 노벨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일반 참석자들의 맨 앞 좌석에 앉았으며 김 대통령 옆에는 베르게 위원장과 노벨상 심사위원 5명이 자리했다.
식장의 분위기가 정리되자 베르게 위원장은 발표문을 통해 '왜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됐는가'를 설명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인생 역정이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의 삶과 비슷하다고 평가하면서 "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초인적인 것으로, 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이 보다 진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김 대통령이 자유당 정권의 매수를 거부한 일화 등 야당 정치인과 재야 인사로서 걸어온 역정을 상세히 설명한 뒤 "인권을 위한 헌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이 수상의 이유"라고 말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특히 "평화 노력의 역전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벨위는 '해보려고 애쓰는 시도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면서 "5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김 대통령의 의지는 정치적 용기"라고 극찬했다.
베르게 위원장은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김대중씨 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이 없다"고 강조한뒤 노르웨이 시인 군나르 롤드크밤의 시 '마지막 한 방울'에 나오는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는 귀절로 경과 보고를 마쳤다.
이어 김 대통령은 베르게 위원장으로부터 노벨평화상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았다. 이 순간 참석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수상을 축하했다.
김 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축하에 답하고 오른 손에 메달을, 왼손에 증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장내는 다시 축하 박수로 가득찼다.
한국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는 '아리아리랑' '어메이징 그레이스' '일 바치오'등 축가를 불렀다.
축가가 끝나자 베르게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수상 연설을 요청했다.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동지와 국민에게 이 영광을 바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영어와 노르웨이어로 동시 통역된 25분 간의 연설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지원해 준 세계의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으며 노벨위에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그 후의 진전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 얼마가 걸리더라도 남북이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백성을 하늘로 섬긴다' '사람이 즉 하늘이다'는 인내천(人乃天)을 예시하며 "아시아에도 서구민주주의와 맥이 통하는 사상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선정을 배풀지 않으면 백성이 하늘을 대신해 들고 일어나 임금을 몰아낼 권리가 있다'는 맹자의 말을 언급하며 아시아의 사상적 뿌리가 서구의 민주주의와 결합할 때 선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김 대통령은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 세계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정의로운 삶을 산 사람은 당대에 비참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승자가 된다"는 '정의필승'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민족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바레트 두에와 정순미씨 부부가 '파사 카글리아(불꽃 같은 열정)'라는 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시상식은 끝났다. 김 대통령은 국왕과 가족이 앉은 자리로 내려와 환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대통령은 기립 박수를 받으며 국왕과 함께 메인 홀의 중앙을 걸어 나와 현관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시청 앞에 운집한 수많은 오슬로 시민과 노르웨이 거주 동포 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축하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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