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에 추신구라(忠臣藏)란 작품이 있다. 1700년대 초 에도(江戶ㆍ도쿄)에서 있었던 사건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충의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은 47명의 가신이 집단자살하고 마는 끔찍한 스토리다. 아코(赤穗) 번(藩) 영주 아사노 다쿠미노가미(淺野內匠頭)가 에도 성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기라 고즈노스케(吉郞上野介)를 칼로 쳐 상처를 입히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 하극상 사건으로 아사노가 할복자살 형을 받고 억울하게 죽자, 아코 번 가로(家老ㆍ가신의 우두머리) 오이시 구라노스케(大石內藏助)가 46명의 가신을 이끌고 기라 저택을 습격, 원수를 갚은 뒤 전원 할복자살하고 만다.
추신구라의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가신들이 죽은 주군의 명예회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그 처절한 충의정신을 강조하고싶어서다.
최근 며칠동안 이 땅의 가신이란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자꾸만 그 일화를 곱씹게 된다.
앵커출신의 여당 최고위원이 대통령에게 이 정권의 가로 격인 최고위원 한 사람을 지목해 퇴진시켜야 한다고 진언한 일을 계기로, 가신들 사이에 목불인견의 권력 싸움이 벌어졌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용기로 비유된 이 발언으로 그간 세상에 나돌던 여러 가지 소문들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었다.
금융기관 불법대출 의혹 같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권실세 개입설이 나돈다는 것, 고생한 사람들을 무마한다는 명목이지만 몇몇 실세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것, 그래서 그 실세가 YS 정권 때의 김 현철처럼 투영되고 있다는 것 등이 퇴진사유로 거론되었다.
이권 개입설에 대해 당사자는 유언비어라고 얼버무렸고, 인사 개입설에 대해서는 민주화 투쟁 때 고생한 동지들 몇 사람 취직시킨 것을 가지고 그럴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본인은 몇 사람이라 했지만 그의 측근은 "동지들의 취직은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당, 민간업체 인사에까지 무성하던 특정인사 입김설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정부에 공식직함도 없는 사람이 100명의 인사에 관여했다는 '자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대통령이 일일이 인사문제를 챙길 수 없기 때문에 중구난방식 인사를 막기위한 최소한의 보좌'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었다.
당의 인사라면 관련 당직자와 기구가 있을 것이요, 정부 인사라면 해당 부처와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공식기구가 있는데, 어떻게 당 최고위원이 그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 정권 출범 때 동교동계 가신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면서 일체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결의했었다. 그런데 같은 당 동료 입에서 제2의 김 현철 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니, 차라리 책임 있는 공직을 차지함만 못하다. YS를 반면교사로 삼아 그 반대로만 하면 된다던 다짐들은 다 어디 갔나.
퇴진공방으로 인한 가신들의 주도권 싸움은 어느쪽에도 이로울 것 없다는 판단에서인지 작전상 휴전에 들어갔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미봉상태로 설합 속에 넣어둔 꼴이니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를 일이다.
이번 권력투쟁을 통해 우리는 나라가 시스템과 합의에 의해 굴러가지 않고, 비공식적인 사조직에 의해 움직여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에게 추신구라의 가신들처럼 붉은 충의정신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신들의 탐욕으로 주군을 곤혹스럽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안다면, 할복은 그만두고 조용히 물러나 참회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문 창 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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