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생각해 보는 이채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디자인 혹은 예술전'이라는 제목으로 1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를 자처하고 있는 선재아트센터가 기획했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디자인 미술관이 처음 외부 지명 공모를 바탕으로 마련한 전시회다.이 전시회에서 '미술은 순수한 것이며 디자인은 응용된 것'이라는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디자인과 미술과의 접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순수미술작가들은 디자인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을까. 둘 다 시각에 호소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디자인과 미술은 하나의 단단한 끈을 공유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미술가가 될 수 있고, 미술가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유연한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디자인과 미술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관계이기도 하다. 서로 배척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기를 거부한다. 같은 미술 대학 안의 미술학과와 디자인학과의 미묘한 알력과 제도적 단절을 떠올려 보면 이 점이 명료해진다. 서로 달리 태어났고 별개의 영역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디자인과 미술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디자인이 일방적으로 미술이 되고, 또 미술의 기능을 차용하거나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 이영준)
김순기 김범 박이소 안규철 김홍주 주재환 김나영 이미경 등 아트선재센터의 작가 17명은 전시회에서 이러한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털어 놓았다.
이번 전시회를 위한 특별한 고민일 수도 있고, 평소 쏟아놓은 고민을 큐레이터들이 감각적으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기도 했다.
허무주의자처럼 보이는 박이소씨는 '밝은 미래를 디자인하는 작업테이블'을 내놓았다. 조명기가 설치된 사무용탁자는 디자인과 미술의 모호한 긴장관계를 역설한다.
모든 사물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최정화씨는 길거리에서 주은 의자와 반짝거리는 인조무궁화를 통해, 하잘 것 없으나 디자인적으로 괜찮은 작은 물건이 작가의 눈에 띄어 '미술작품'으로 대접받으며 미술관에 놓이는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재불작가 김순기씨의 영문자와 한자를 이용해 만든 시력측정표는 '뜬금 없는' 작품으로 치부하기엔 타이포그래피가 너무나 논리적이고 정교하다.
안규철씨의 조명디자인, 이미경씨의 테이블 오브제, 김범씨의 웹 아트 디자인은 전시공간 구성 자체에 적극적으로 참여, 디자인적 요소를 극대화한다.
작가들이 디자인과 미술의 감성적 통로를 부지런히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길은 우리가 디자인에 대해 품어왔던 고정관념과는 분명 다른 길이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