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9일동안 열렸던 제10차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협상이 결론없이 막을 내렸다. 양측은 형사관할권과 환경 검역 노무 시설 등 6개 분야의 협상에서 일부 합의를 이뤘으나 각 분야의 핵심사항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형사재판권의 경우 미국측은 피의자신병인도를 종전의 확정판결에서 기소시점으로 해주는 대신 한국측에게 징역 3년 이하에 해당하는 단순절도, 폭력 등 경미한 범죄에 대한 재판권행사 포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군범죄피해의 대부분이 단순절도, 교통사범, 폭력인 만큼 이들 범죄에 대해 재판권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사법주권의 포기이며 국민정서상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다고 거부했다.
또 미국은 피의자의 인권보장장치로서 피의자의 증인 및 신고자에 대한 직접 심문권 등 내국인 피의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우리 형사소송법과는 상반되는 요구를 했다.
이는 영미법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미국은 같은 대륙법 국가인 일본과 NATO SOFA에서는 이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
환경조항 신설에서도 한국측은 의무조항을 SOFA 본문에 신설하자고 했으나 미국은 선언적 수준의 공동선언문으로 하자고 주장해 대립했다. 미국이 환경조항 신설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추가예산 부담과 여타 80여개국과 맺은 SOFA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국내 환경법이 적용되어 미군의 환경오염을 철저하게 감독, 처벌하고 있다. 이에대해 미국은 "독일은 예외"라고 한다.
그러나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미군은 처음부터 전승국 내지 점령군으로서 위상을 갖지만 주한 미군은 주권국가간에 상호방위를 위해 주둔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오히려 더 평등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10차에 이르는 한미 SOFA 협상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는 한미 기본관계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 시각의 차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은 한미관계를 아직도 1966년 SOFA가 체결될 당시 냉전시대의 일방적 특혜 및 시혜관계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한미관계의 시각이 SOFA협상의 핵심 쟁점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은 미군이 한국인들을 북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마땅히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군주둔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제가 북한의 무력적 모험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지금은 1990년 독일통일 및 구 소련의 붕괴, 6ㆍ15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관계의 발전이후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도 명백히 완화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실제 남북한 국방장관회담에서 군사적 신뢰조치가 논의되고 있고, 북미관계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및 핵문제에 관한 많은 진전이 있지 않은가. 이런 시점에 미국이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를 전제로 일방적 불평등관계룰 강요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위상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역안정자 및 세력균형자로서 새로이 자리매김돼야 하고, 미국도 한반도를 군사안보적 이해자로서가 아니라 경제ㆍ사회적 파트너로 봐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미국은 50년대식의 일방적 시혜및 특혜관계로서의 한미관을 이제 동반자 관계라는 시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미국의 이같은 시각의 교정이 없는 한 미국이 지난날 선의로 한국의 어려운 시절에 보여준 우의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므로 향후 SOFA 협상은 몇 개의 조문의 양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기본관계 정립에 대한 대화와 이해의 작업, 그리고 이에 따른 근본적 틀의 수정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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