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해체후 미국-러시아간 최악의 스파이 스캔들인 에드먼드 포프(54) 사건 이면에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초고속 어뢰 '쉬크발(Shkval)'이 있다.이 무기는 러시아가 40년간의 연구 끝에 최근 개발을 마친 최신예 수중발사 미사일로, 잠수함전의 역사를 새로 쓸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모스크바시 법원의 니나 바르코바야 판사는 6일 미국인 사업가인 포프가 쉬크발에 대한 기밀정보를 수집, 러시아의 경제ㆍ정치ㆍ군사적 이해관계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러시아가 스파이 혐의로 미국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1960년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격추 당한 U-2기 조종사 게리 파워스 이후 처음이다.
법원은 포프가 암을 앓은 병력이 있다는 변호인측 청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등의 석방 탄원을 모두 기각했다. 러시아가 미국과의 외교 마찰을 무릅쓰고 이처럼 강경 대응한 것은 '강한 러시아'를 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쉬크발의 군사적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질풍(疾風)을 의미하는 쉬크발은 기존의 어뢰가 안고 있던 수중 물리학적 한계를 극복한 그야말로 획기적인 무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쉬크발의 순항 속도는 보통 어뢰 보다 5배 이상 빠른 시속 230마일(약 368㎞)에 이른다.
이는 쉬크발이 러시아 잠수함에 실전 배치될 경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잠수함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발레리 알렉신 전 러시아 해군중장은 "쉬크발은 잠수함 발사체의 신기원을 연 무기"라면서 "미국의 어떤 잠수함도 쉬크발의 사정권을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로켓 추진형인 쉬크발이 이처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어뢰 등 수중 무기의 최대 약점인 마찰력 부담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쉬크발은 순항중에 주변에 반(半) 진공상태의 기포를 형성, 추진체 표면에 가해지는 마찰력을 극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추진체와 물의 마찰력을 분리함으로써 대기중과 같은 속도를 내는 셈이다. 소련은 미국에 열세를 보였던 잠수함 전력을 단번에 역전시키기 위해 1960년대부터 쉬크발 연구에 주력했고 이를 이어받은 러시아가 마침내 완성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따르면 미 해군 정보요원 출신인 포프는 지난 4월 모스크바 바우만 공대의 아나톨리 바브킨 박사로부터 쉬크발에 관한 4종의 설계도 등을 2만8,000달러에 구입, 이를 미 정보당국에 제공하려 한 혐의다.
그러나 변호인측은 포프가 사업을 하면서 펜실베이니아대를 위해 상업적 목적으로 정보를 매입했고, 이 정보가 기밀에서 해제된 것이라며 상소할 뜻을 밝혔다. 한편 FSB 국장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법원 소관 사항 "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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