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다. 민선 단체장, 지방의원, 공무원들이 토호 등 기득권 세력과 결탁, 비리와 선심행정을 일삼는 '그들만의 공화국'으로 전락했다.'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초기의 개혁의지가 퇴색하고 경제난 타개에 행정력이 쏠리면서 통제력이 약해지자 지자체는 특정인의 이익 챙겨주기에 더욱 열을 올린다.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는 선심행정도 지방재정의 안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모두 딴데 신경쓰는 사이 일선 공무원들은 건설업체 유흥업소 등을 상대로 '수탈'에 열을 올린다.
이같은 난맥상은 특정인을 위해 제도와 규정을 마구 바꾸고 납득할 수 없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부산시 산하 공기업인 부산관광개발은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특정업자에게 46억여원의 특혜를 제공, 말썽을 빚고 있다. 관광개발은 아시안게임 골프장 건설공사를 코오롱건설에 528억3,000만원에 낙찰시킨 뒤 실제 계약에서는 일부 공사를 시행하지 않기로 해 부당이득을 얻게 해줬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관광개발 사장 등 관련자 3명을 출국금지하고 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집중 수사중이다.
경남 창원시는 총공사비 597억원의 관급공사를 특정 기업에 넘기기 위해 입찰조건을 '조변석개(朝變夕改)'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의회에 따르면 시는 대산면 하수종말처리장 공사를 발주하면서 6월29일 최초 입찰공고를 낸 뒤 2차례 정정공고를 낸 데 이어 취소공고를 내더니 8월31일 입찰자격을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안을 채택했다.
창원지역에서 는 "창원시가 서울지역 특정업체를 밀어주려고 자격조건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단체장 17% 사법처리 지방의원도 비리 '단골'
최근 한 광역단체가 추진하던 550억원 규모의 민자 유치사업도 관련 공무원의 수뢰와 단체장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면 중단됐다. 이 지역 환경단체는 "박물관 건립승인 직전 도지사 부인이 인근 지역 토지를 매입했다"며 개발정보를 먼저 입수해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자체의 특정인 봐주기는 하루 이틀된 게 아니다. 1998년 12월 대전 서구의회는 대전지역 5개 구의회 중 유일하게 괴이한 내용의 건의안을 채택, 시에 제출했다.
도시개발공사가 맡아온 쓰레기 처리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하라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주민편의를 내세웠지만 2개월 후 당시 남모(64) 시의회 의장이 생활쓰레기업체로부터 쓰레기 처리업무 수주를 조건으로 5,000만원을 받았고, 이 가운데 780만원을 서구 의원 3명에게 나눠준 사실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이모(사망) 서구청장도 남 의장으로부터 상품권 20장(200만원어치)을 받았다.
특정인 봐주기를 비롯, 지자체 비리를 생산하는 주역은 단체장이다. 98년 제2기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 및 기초단체장 248명 중 사법처리된 경우는 17%인 40명으로 1기 단체장 사법처리자 18명의 배를 넘는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양파껍질처럼 중층구조를 이루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비리사슬의 핵심에는 민선 단체장이 자리하고 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선거비용을 지출하고 인맥을 총동원해 힘겹게 당선된 단체장들이 얄팍한 본전 생각과 신세진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는 비뚤어진 인정에 집착하면서 온갖 비리가 자행된다. 이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와 일반공무원은 정치력과 인사권을 틀어쥔 단체장에게 저항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서울지검은 지난 7월 14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충북지역의 한 개발사업과 관련, 시공업체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A군수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A군수는 단체장선거 때 선거운동을 도왔던 이모씨의 알선으로 자본금 5,000만원에 불과한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군수는 대신 그 회사에 자신의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하도급업체로 선정하도록 부탁, 선급금으로 2억원을 받게 했다. 이같은 잡음으로 개발사업은 답보상태에 빠졌으며, 군은 부지매입비(30억원) 공사대금(70억원) 회원권 분양대금(100억원) 등 총 200억원을 물어내야 할 지경에 처해 있다.
비리를 주도하는 단체장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사권으로 무장한 단체장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다. 전북 전주시와 경남 의령군은 인사전횡의 대표적인 사례. 김완주(金完柱) 전주시장은 지난 연말 국장급 인사에서 영상산업국장으로 발령난 B씨가 불만을 표시하자 오전에 발표한 인사를 오후에 전격적으로 바꿔 체육시설관리소장으로 좌천시켰다. 의령군수는 10월에 실시된 의료기술직 9급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친척인 계약직 공무원 전모(26ㆍ여)씨를 인사규칙을 무시하고 정규직으로 특채해 경남도의 감사를 받았다.
일부 단체장은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견제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의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단체장들은 지방의원들의 호화판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등 유착고리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예산감시시민행동 백현석(白鉉錫) 기획팀장은 "민선 단체장 이후 지방공무원과 지방의원은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단체장과 단체장이 소속된 정당의 시녀가 됐다"며 "이들이 단체장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하면서 혈세가 특정인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장들의 비리와 전횡이 이어지자 서울 등 5개 광역자치단체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지난달 17일 구청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해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또 단체장을 견제하기 위해 최소한 주민소환제 및 주민투표제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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