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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지나 또바위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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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지나 또바위 '월출산'

입력
2000.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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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서니 사위는 바위의 바다"아이구야~." 거친 숨이, 신음이 절로 나온다. 절벽을 잇는 구름다리를 지날 때에는 얼마나 오금이 저릿저릿했던가. 다리를 지나자마자 길은 거의 90 도로 하늘을 본다. 계단이 걸려있다. 아니 사다리라고 해야 옳다.

사다리와 바위에 붙어 네 발로 기어오르기를 10여 분. 바위 봉우리 9부 능선에 넓은 바위가 나타났다. 지도에는 '매봉'이라고 쓰여있다. 아직 등산로의 초입. 그러나 아니 쉴 수가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매봉에 올랐다. 그 곳부터 길은 땅 속으로 꺼진다.

경사도 경사지만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아깝다. 내리막길 내내 손해 보는 느낌이다.

조만간 나타날 오르막이 두려운 까닭이다.

월출산(808.7㎙ㆍ전남 영암군, 강진군) 산행은 이렇게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의 파도타기로 시작됐다. 1,000㎙를 넘지 않는 낮은 산이란 선입견은 교만이었다. 최고봉인 천황봉에 오르는 3 시간 내내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누구엔가 이끌리듯 발길은 이어졌다. 눈에 보이는 산세. 그것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출산은 바위산이다. 주변 100리 반경이 모두 평야인 곳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풍화와 침식을 반복하면서 울퉁불퉁한 제멋대로의 모습을 갖췄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의 윤곽부터 심상치 않다. 그래서 덩치는 작지만 국립공원이다.

천황봉에 오르는 막바지 오르막이 고비였다. 부식된 나무계단 위로 튼튼한 철골 계단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계단의 높이가 사람의 다리로는 조금 무리인 듯, 마지막 힘을 모두 빼앗아 갔다. 드디어 정상. 헐떡거리던 호흡이 저절로 멎었다. 사위는 온통 바위의 바다. 비슷비슷한 모습의 바위들이 천황봉을 중심으로 햇살처럼 펼쳐져 있다.

사나운 짐승의 떼가 우두머리를 향해 도열한 것 같다. '참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천황봉을 떠나 구정봉에 이르는 길은 바위 무리를 가깝게 대하는 '친교의 시간'이다.

다가가서 본 바위들은 거대했고 저마다 다른 얼굴이었다. 자연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정교하게 깎여진 바위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둥글둥글해 친근했다. '이제 왔는가'라며 반기고 있는 듯했다.

구정봉은 봉우리 위에 아홉 개의 물웅덩이가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대부분 등산객은 그러나 구정봉으로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그냥 지나치거나 옆의 바위 절벽인 향로봉에 기를 쓰고 오르기도 한다. 구정봉 쉼터에서 마애여래좌상 입구를 지나쳐 계속 바위에 다가가면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굴이 나온다. 굴을 지나 아슬아슬한 바윗길을 돌면 물웅덩이가 패인 정상에 이른다. 물웅덩이는 목욕탕 욕조만한 것에서 바가지만한 것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큰 웅덩이의 물은 마르는 법이 없다. 가뭄이 깊으면 이 물을 떠다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구정봉부터는 내리막이다. 워낙 시련을 받은 다리는 내리막에서 더 맥을 못 춘다. 크고 작은 돌덩어리가 이어진 너덜지대를 한 30분쯤 내려왔을까.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억새밭이다. 이미 억새꽃은 바람에 모두 흩어지고 꽃대만 스산하게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고 있었다. 억새밭 한 편으로 큰 바위가 45도 각도로 삐죽 솟아있다. 중년의 등산객 두 명이 올라앉아 있다. "신선이 따로 있나!"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은 그 곳에서 그들은 소주병을 꺼내놓고 있었다. 바위 아래로 성전저수지의 물빛이 기우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신선은 아니더라도 행복한 산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억새밭부터 종착지인 도갑사까지는 흙길이다. 지나온 돌길에 비하면 아스팔트 포장길이나 다름없었다. 가뭄 속에서도 계곡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마셔 보았다. 뒤통수가 아플 정도로 차가웠다.

도갑사 건물이 눈에 띄면서 갑자기 무릎이 얼얼하고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다리는 분명 지옥에 다녀왔다. 그러나 머리 속에는 하늘나라의 기억만 가득하다. 영암=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 길

멀다. 승용차로 서울서 최소한 4시간 30분을 달려야 영암읍에 닿는다. 호남고속도로 광산나들목에서 빠져 무조건 13번 국도를 따라가면 나주를 거쳐 영암에 이른다.

서울에서 영암까지 시외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이기 때문에 5분마다 출발하는 광주행을 타고 광주에서 10분 간격으로 있는 영암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좋다. 영암에서 산 입구인 천황사와 도갑사까지는 각각 하루 세 차례씩 버스가 있다. 시간을 벌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4,000원. 승용차를 천왕사에 두고 도갑사로 내려올 경우 도갑사 앞에 도열해 있는 택시를 타면 된다. 천황사 입구 주차장까지 1만 2,000원에 데려다 준다. 월출산관리사무소 본소 (061)473-5210, 도갑사무소 473-5111

■ 쉴 곳

월출산온천관광호텔(061-473-6311)이 이 지역에서는 가장 시설이 좋은 숙박시설.

대온천탕을 갖춰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호텔방에서 월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황사와 도갑사, 경포대 지구에 민박촌이 있다. 민박 안내 472-0015.

월출산 산악인의 집(473-3778)은 특히 전문 산꾼들이 즐겨 찾는 집. 감나무가 집 주변을 빙 두르고 있다.

■먹을 것

영암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낙지. 영암읍내의 동락식당(061-471-3388)이 가장 유명하다.

시원한 소갈비 국물을 뚝배기에 넣고 낙지를 끓여낸 갈낙탕(1인분 1만 2,000원)과 낙지와 조개를 넣어 국물을 우려낸 연포탕(1만원)이 주 메뉴이다.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은 처음에는 맹탕인 듯하다가 숟가락이 오갈수록 점점 깊은 맛을 느낀다. 반찬으로 토하젓과 전어속젓을 내놓는다. 남도 젓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식당에서 젓갈을 판다.

■1988년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면적이 41.88 ㎢로 국내 국립공원 중 가장 작다.

그러나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이 연출하는 산세는 호남의 명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신라시대에는 월라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이라고 불렀다. 수도권에서 멀어 산행을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가장 손때를 덜 탄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꽃 등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바위의 풍광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 낙엽이 모두 지고 눈이 내리기 직전이다. 대부분 등산로가 바위봉우리를 감돌며 이어지기 때문에 지리산 천왕봉에 버금가는 힘든 산행으로 꼽힌다.

등산코스는 크게 네 가지. 가장 인기있는 것이 월출산의 얼굴인 천황사에서 시작해 천황봉- 구정봉-갈대밭을 거쳐 도갑사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

총 8.5㎞로 6~7시간이 소요된다. 이 코스는 초입에서 구름다리-매봉-천황봉 코스와 바람폭포-천황봉 코스로 나뉜다. 시작부터 바윗길이기 때문에 초반 호흡조절이 필수. 구름다리 코스는 눈이 내리면 출입이 통제된다.

천황사에서 시작해 구름다리 코스로 천황봉에 올랐다가 바람폭포 쪽으로 다시 내려오는 코스는 5.8㎞로 약 4시간이면 가능. 천황봉에 올랐다가 강진군인 경포대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6.1㎞ 구간으로 약 5시간이 걸린다.

경포대에서 올라 도갑사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언덕을 피할 수 있는 코스. 7.8㎞ 구간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월출산의 진면목을 맛보기에는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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