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학은 손에 닿지않는 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학은 손에 닿지않는 별…"

입력
2000.12.07 00:00
0 0

* 33회 한국일보 문학상 하성란씨맨 처음 글을 쓴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는 작문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아이들 대부분이 동시와 동요의 개념조차 구분할 줄 모르던 때였다.

그때 쓴 동시의 제목은 '미술 시간'이었는데 소년 잡지 어디선가 본 것을 생각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그 동시는 한 학기 동안 학교 복도에 걸려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문예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방과 후 학교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했다. 교재로 배우던 책에는 여러 가지 '모범 사례'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 책에 실려 있던 한 소년의 시 때문에 나는 절망했다.

그 시의 제목은 '해에게서 소년에게'였다. 그 소년에 비하면 내가 가진 재능은 재능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최남선이 내 또래의 남자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루쉰, 펄벅. 이들의 이름은 내게 별이었다. 상징적인 의미의 별이 아니라 눈을 뜨면 이 이름들이 내 시야 가득 별처럼 반짝였다.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면서 나는 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독립했는데 그곳은 다락방이었다.

외풍이 센 양옥집이라 그 당시 출판사에 다니고 있던 아버지는 장난 삼아 도배지 대신 총천연색의 상급질 종이인 '찌라시'로 다락을 도배해주었다.

나는 오면이 온통 인쇄물인 다락방에서 고등학교 2학년 여름까지 살았다. 눈을 뜨면 크고 작은 활자들이 별처럼 떨어졌다. 언젠가는 그들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 키보다 낮았던 천장에 붙어 있던 그 이름들은 별처럼 먼 곳에 있었다.

일곱 살 난 딸아이가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가운데 '토이 스토리'라는 것이 있다. 장난감을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개구쟁이가 나중에는 그 장난감들로부터 복수를 당하는 내용이다.

팔, 다리가 잘리고 머리에 못이 박힌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개구쟁이를 둘러싸는 장면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괴롭혔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실종되었다. 괴롭히는 방법도 다양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었고 반미치광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단 한 사람도 정상적인 인물이 없었다.

난 그들을 멸치처럼 달달 볶아댔다.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언젠가 내가 만들어낸 무수한 인물들이 잠을 자고 있는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흉칙한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상상이다.

감히 말하건대 불쌍한 내 소설 속 인물들이여, 소설의 극적인 장치를 위해 재미를 위해 그대들을 이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그러면서도 나는 현실보다 내 소설은 훨씬 얌전한 편이야, 라고 위로를 한다.

한때 표어를 짓는 일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열여섯 글자에 담아보려 애를 썼다. 그때 내 꿈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표어처럼 단순명쾌한 표어를 짓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늘 열두 자이거나 열아홉 자였다.

나의 글쓰기는 표절이라는 창피함에서 시작되었다. 25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전히 소년 최남선에게서 느낀 절망의 연속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의 별일 뿐이다.

어릴 적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상과 벌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상을 주신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매를 기다리는 아이 때처럼 불안했다. 그 매를 드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한국일보에 감사 드린다. 아프다고 엄살 떨지 않겠다.

최규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