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연말 결단'이 정국의 화두가 됐다. 김 대통령이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파악, 거기에 맞는 국정쇄신책을 내놓아 위기 극복의 전기를 맞을 것인가? 여권 권력갈등으로 번진 ' 권노갑 퇴진론' 이 DJ의 결단을 어렵게 하지는 않을 것인가?국민들은 지금 맞고 있는 어려운 경제상황이 3년전 환란 위기가 엄습하기 직전과 비슷한 것에 놀라고 힘들어 한다. 여기에다 DJ 정부의 오늘이 임기 마지막 1년을 보낼 때의 YS 정부의 지리멸렬한 모습과 닮은 것에 절망한다.
97년의 한보와 기아 사태, 지금의 대우와 현대 문제가 꼭 닮았다는 점에서 이 정부의 개혁의 현주소를 본다.
폭발력이야 다르겠지만 97년 나라를 뒤흔든 김현철 비리처럼 DJ 정부도 권력형 비리 의혹을 낳고 있는 잇단 금융스캔들로 휘청거리고 있다.
YS 정부가 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처리로 전락(轉落)의 길에 들어섰다면 DJ 정부는 검찰총장 탄핵안 실력저지로 경제위기론에 불안해 하던 민심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상황이 어렵자 그때나 지금이나 대대적 사정을 들고 나온 것도 닮았다. 그때의 상도동계 분파화(分派化)는 "저리 가라"는 식으로 터진 동교동계 '권력쟁투설'은 또 무엇인가.
지금 이 정부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제2의 경제위기 이상의 신뢰의 위기이다. 국민들이 실패한 YS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오히려 더 하다고 생각한다면 총체적 위기를 이겨 나갈 힘을 얻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이나 권력 핵심들이 혹시라도 현 상황이 전통적ㆍ지역적 DJ 비토세력의 정서적 반감에 의해 실제 이상 증폭됐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이 정부의 자만과 안이한 현실인식이 부른 정책 실패, 원칙없는 정책집행과 실기(失機)가 빚은 경제의 어려움과 정치 불안으로 신뢰 상실과 함께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문제가 풀린다.
DJ의 연말 결단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YS는 노동법 날치기 처리로 민심이 심상치 않던 97년 1월 연두회견에서 겸손하지 않았다. 그는 "내 사전에 레임 덕은 없다"는 식으로 모든 사안에 대해 위압적ㆍ공세적 자세를 보였다. 아무것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심은 결정적으로 그를 버렸고, 그 후 국정장악력은 그의 손을 떠났다.
DJ가 YS에게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얻는다면 연말 결단은 마음을 비우고, 권력을 나눠주고, 비판ㆍ반대 세력과 함께 가는 '자기희생' 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레임 덕에 대한 우려나, 권력 재창출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야말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 나오는 총재직 사퇴, 탈당, 거국 내각 그 어느 것도 쉬운 게 없고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 있다. 어떤 것은 야당의 정치공세 측면도 없지 않다. 꼭 이것만이 국정쇄신 구상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DJ로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권노갑 퇴진론' '동교동계 2선 후퇴론'에 대해서도 뼈를 깎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거꾸로 '다수세력 구축론' 같은 숫자 놀음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할 때 민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권을 내놓겠다"는 것과 "정권을 내놓을 각오도 돼 있다"는 것은 다르다.
민심을 다시 얻는다면 DJ는 다 주고도 이길 수 있다.
/최규식 편집국 부국장겸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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