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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조훈현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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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조훈현 프로기사

입력
2000.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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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바둑과 함께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국제대회 6회, 국내대회 150여회 타이틀을 땄으니 이제는 우승을 해도 무덤덤하다.하지만 지금부터 11년전, 제1회 잉창치(應昌期)배 세계프로바둑대회의 우승은 언제 생각해도 감격스럽기만 하다.

잉창치배는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바둑 올림픽.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바둑기전이다.

1회 대회에는 일본과 중국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대거 출전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 바둑이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중국의 녜웨이핑(攝衛平), 린하이펑(林海峰) 등이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우승 상금(40만 달러)도 상금이지만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기 때문에 나 또한 절대 지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1회전은 무사히 통과했다. 이어 일본의 최강자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와 린하이펑을 잇달아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예상대로 녜웨이핑. 그는 중ㆍ일 슈퍼대항전에서만 일본 최정예 기사를 상대로 12연승을 거두는 등 당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더욱이 처음 세 판이 그의 홈 그라운드인 중국에서 열리기로 돼 있어 중국측은 그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나는 1국은 이겼지만 2, 3국을 거푸 내줘 1승 2패를 기록한 채 4, 5국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했다.

4국에서는 흑을 잡았는데 8집을 공제하고도 1집을 이겼다. 2대2가 되자 국민들은 내가 멋지게 이기리라 믿었고 언론사들도 싱가포르로 취재진을 긴급 파견했다. 나는 그런 기대에 부응, 5국에서 145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우승 소식은 신문 1면 기사로 나갔고 방송에서는 첫 뉴스로 보도됐다. 나에 대한 자서전 같은 기사도 실렸다.

다음날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사진기자들이 나를 향해 집중사격이라도 하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한국기원이 있는 종로2가까지 카퍼레이드도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차 앞에는 '장하다 조훈현'같은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던 것 같다. 인도의 시민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 바둑 역사상 카퍼레이드는 그때가 유일할 것이다.

그 뒤 서봉수 유창혁 등이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또 이번에는 이창호가 도전한다. 내가 스타트를 잘 끊어 계속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11년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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