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정환(46) 씨가 새 시집 '해가 뜨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시인은 그것이 자신의 몇번째 시집인지를 모른다. 하물며 자신의 몇번째 저서인지는 가늠도 못한다.그는 지금까지 시 소설 에세이 평론 극작 등 글쓰기의 모든 갈래를 넘나들며 '미지수(未知數)의'책을 펴냈다.
다작이 그 자체로 미덕인 것은 아니다. 다작은 그 주체의 원기(元氣)나 근면이나 집착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늘 추구해야 할 가치인지는 또렷하지 않다.
예컨대 파시즘을 찬양하고 인간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쓰레기 글들이라면, 되도록 적게 생산되는 것이 인류에게 이롭다. 또 그렇게 노골적으로 해로운 글들이 아닐지라도, 다작이 주체의 역량에 과부하로 작용해 글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경우에도 그것을 마냥 추천할 수는 없다.
글쓰기의 영역에서 다작을 생각할 때, 기자에게 얼른 떠오르는 이름은 네다섯 정도다. 시인 고은과 김정환, 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최인호, 언론학자 강준만 등이 그 이름들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이름들은 증오의 메시지들과 무관하다. 또 이 이름들은 커다란 부피가 옅은 밀도로 이어지지 않도록 비교적 잘 단속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들은 바람직한 다작가들이다
김정환의 다작은 특히 안팎으로 놀랍다. 바깥으로 놀라운 것은 그에게 도대체 글을 쓸 시간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80년대에는 민족민주 운동권의 활동가로서 감옥을 제집처럼 들락거렸고, 감옥 갈 일이 없어진 90년대 이후로는 맨 정신으로 귀가하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셔댔다.
안으로 놀라운 것은 그의 글의 밀도가 그 부피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산문가로서의 그는 아름답고 정확한 글을 신경질적으로 선호한다. 그는 오문 쓰기에 대범한 고은과도 다르고,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애초부터 버린 강준만과도 다르다.
'해가 뜨다'는 여전히 김정환다운 시집이다. 책 뒤의 해설자는 김정환 시의 '진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기자가 보기에 김정환의 시는 진화하지 않았다. 김정환 시의 운동은 차라리 자침(磁針)의 미세한 떨림에 가깝다.
그 자침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싶어하는 곳은 서정적 관념 또는 관념적 서정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세계다. 한국 문단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하나일 그의 시 속에서, 삶도 역사도 그리고 혁명도 더러 구체의 살이 발린 관념이 되는 것은 묘한 일이다.
아마 그 관념의 힘으로 김정환은 아직도 "발 디딜 곳 없는 희망"(표제작 '해가 뜨다'중에서)을 노래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관념은 흔히 초라하고 앙상하다.
특히 그것이 지나친 다이어트가 유발한 거식증의 결과라면 그렇다. 그러나 김정환의 관념은 허기증의 결과다. 그 관념은 시인의 탐욕스러운 낭만적 탐미주의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서정적이고,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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