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구제금융 요청아르헨티나와 터키가 파산의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들 국가의 유동성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또 다시 '긴급 수혈'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은 3년 전 한국이 경험했듯이 뼈를 깎는 긴축과 개혁을 담보로 한 것이다. 국제자본시장은 이들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금융위기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터키
터키가 또다시 금융위기설에 휩싸여 있다. 이스탄불 증시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ISE100 지수는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2주전에 연35%선을 유지하던 금리는 며칠 사이에 60%로 치솟았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지난 1일 전날의 400%에서 1,700%로 급등했다.
주가와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1주일간 60억달러를 시장에 투입한 터키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이 180억 달러수준으로 바닥을 보이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터키는 1993년 이후 두 차례나 자신을 통치했던 IMF에 긴급히 20~40억 달러의 추가적인 단기 차입을 요청했다. 터키는 그러나 IMF가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터키 정부는 IMF와 협상하기 위해 1,000%에 육박하는 이자율을 대폭 낮추고 국영전화회사인 터크 텔레콤 주식매각을 약속해야 했다.
호르스트 쾰러 IMF 총재는 3일 "연내에 추가 구제금융 제공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를 위해선 금융 시스템 보강을 위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IMF는 지난해 12월 터키에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을 조건으로 향후 3년간 4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합의했었다.
전문가들은 터키가 다시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민영화 계획 등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내부의 갈등과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으로 부실 기업이 방치됨으로써 국가 신뢰도가 무너지고 통화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긴축으로 막는 대신 돈을 찍어 메웠다.
터키 정부는 2002년 1월1일 현재의 화폐단위(터키 리라)를 무려 100만분의 1로 축소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화폐개혁이 인플레 해소책이 아니고 단지 지갑의 무게를 줄여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현재 중남미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아르헨티나이다. 미국의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와 무디스 등 신용평가 회사들은 지난달 아르헨티나 정부의 예산동결 등 개혁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IMF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IMF는 아르헨티나가 요청한 215억 달러 상당의 구제금융 제공 여부는 전적으로 5년간 재정지출 동결 등 경제 개혁안의 실행에 달려있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에 대한 노동조합의 항의 파업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페르난도 델라 루아 대통령은 재정동결은 국가파산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행히 야당이 최근 정부에 협조키로 선회, IMF와의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중남미의 주도세력이던 아르헨티나 경제의 근본문제는 '신뢰도 붕괴'이다. 이 때문에 채권시장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미엄 금리'가 치솟았고 외채가 1,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채수익률은 미국 재무부 채권보다 무려 10% 포인트나 높다. 여기에 경기 침체로 정부의 세입까지 급감하면서 재정적자를 부채질하고 있다.
반복되는 금융위기는 '체질'에도 원인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미국 달러화와 1대1로 교환하는 고정환율제를 고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제조업의 경쟁력이 갈수록 악화했고, 실업률이 15.4%에 이르러 사회 불안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정치권의 뇌물스캔들은 가뜩이나 취약한 델라 루아 정권의 단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현재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부분적 파산선언'이란 극단적 대안을 내놓은 이유도 국가 신뢰도가 와해된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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