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문제는 마치 지뢰밭과 같다. 인간세상 치고 부패가 없는 곳은 없다. 부패현상에서 법칙성을 찾는 것이 가능할지, 부패의 근본적 치유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만큼 부패는 만유편재한다.그런데 왜 부패문제가 21세기의 초입에서 사활의 과제로 떠오르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21세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서다. 부패한 국가나 정부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최근 10년간 부패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왔다. 무성한 논의와 처방, 대통령의 선전포고,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캠페인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부패문제에 사로 잡혀 있으며, 부패방지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만일 현정권이 부패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정ㆍ투명하고 실효성있는 제도를 확립해낸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업적이 된다.
물론 부패는 '질병이 아니라 증후군이어서 일반요법은 없다'는 말처럼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패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부패를 효과적으로 적발해낼 수단이 불충분하다. 금융실명제나 지난해 제9차 국제반부패회의에서 호평을 받은 서울시의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 등은 나름대로 매우 효과적인 방안들이다.
그러나 뇌물수수나 세무비리처럼 당사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당장 직접피해자가 생기지 않거나 그 결과가 가시화하지 않는 부패유형들은 잘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내부고발자보호라든가 신고인센티브제도 같은 특별한 처방이 필요하다.
둘째, 부패가 적발되더라도 이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다시 부패방지효과가 나게 하는 신뢰할만한 기구가 없다.
이 문제는 첫째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이와 관련, 감사원이나 검찰 등 기존의 부패통제기구들이 특히 권력형부패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책임감을 통감하기 바란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실효적 조사권을 가진 독립된 부패방지기구와 특별검사제의 도입에 대해 감사원의 할 일이 없어진다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정작 검찰이 권력형부패의 처리를 통해 얼마나 신뢰를 받았는지 자문할 일이다.
물론 부패방지기구는 어떤 형태이든간에 실효적 조사권을 가져야 하지만 검찰의 기능을 '일상적으로 저촉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 검찰의 본래기능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일반사범은 물론이고 강력범죄나 조직범죄ㆍ마약 등의 분야,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부패범죄에 관한 한 검찰이 불신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부패 일반에 대한 수사 및 소추기능은 역시 검찰에게 맡기는 것이 정도이다. 다만, 검찰도 권력형부패, 정치부패 등에 대해서는 마치 판사가 재판을 회피하듯이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 진취적으로 특별검사제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미국에서 포기한 제도를 왜 도입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제도를 미국에서의 성패라는 잣대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아직도 '탤러허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옷로비 사건 관련 제1심 판결을 통해 특별검사제의 효용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부패문제가 아직도 잘 풀리지 않는 것은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현정권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인권특별위원회가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하는 내용의 인권법안을 확정하던 지난 달 28일 법무부 고위 관료들과 국회의원들간에 설전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
이들 모두가 '대통령의 뜻'을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과연 부패방지법에 대한 대통령의 뜻은 무엇인가. 어떤 법을 만들려고 하는가.
후세에 남을 빛나는 부패방지법을 만들 생각은 없는가.
홍준형ㆍ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ㆍ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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