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다고 그리움이 채워질까체코 출신의 세계적 소설가 밀란 쿤데라(71)가 올해 발표한 신작소설 '향수(鄕愁)'(민음사 발행)가 번역됐다.
그가 망명해서 살고 있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에서 불어로 먼저 출간돼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의 출간은 한국이 세계에서 두번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정체성'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수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쿤데라 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향수'는 공산화한 1960년대의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흔들어놓았던 시련을 깔고 두 남녀의 사랑과 죽음을 그렸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속편 격이다.
줄거리는 19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망명 20년만에 조국을 찾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가 체코 민주화 이후 조국을 방문했던 체험이 담겨 있다.
그는 소설 서두에서 향수를 다룬 최초의 서사시인 '오디세이아'를 빌어 '율리시즈의 귀환'으로 향수를 해석한다.
율리시즈는 트로이전쟁으로 10년간 고향 이타카를 떠나 정착한 칼립소에서 안락한 삶을 얻었지만 그는 과연 안락했는가, 하는 것이 쿤데라의 물음이다.
타지에서의 안락한 삶과 집으로의 귀환 사이에서 이타카로의 귀환을 택한 율리시즈의 선택이야말로 향수의 진정한 의미라고 쿤데라는 말하는 듯하다.
율리시즈의 10년과 쿤데라의 20년에는 공통점이 있다. 쿤데라는 그것을 고향에 대한 무지(無知)라고 말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향수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 세월이 쌓아놓은 무지의 벽은 무섭다. 율리시즈가 노스탤지어를 느낀 것이 현재의 이타카가 아니라 그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이듯이, 향수의 두 남녀 주인공들은 20년의 외국 망명이란 오디세이아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옛 친구와 가족들은 그들이 살아왔던 세월과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향수'의 주인공 이레나는 망명해 있던 파리에서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소련의 체코 침공 이후 덴마크로 망명했던 조제프였다.
이레나는 그를 아는 체 하지만 조제프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돌아온 고향에서 조제프를 기다린 것은 공산정권의 협력자였던 형 부부였다.
그들에게 조제프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도망자이며, 자신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온 희생자일 뿐이다. 조제프가 기억 속의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자신이 어릴 적 쓴 일기장뿐이다.
독자들은 그 일기장을 통해 이레나는 조제프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여인 밀라다의 친구임을 알게 된다. 이레나는 조제프와 사랑을 나누지만 조제프는 이레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이레나는 절망한다.
돌아온 조국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다. 결국 쿤데라는 '대상이 없는,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이며 망명자들은 그들의 '기억 속의 고향'을 찾아 다시 새로운 항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역사에 갈등하는 인간, 세계의 계략에 빠진 개인의 실존을 문제삼으면서 철학적이고도 해학적인 문체로 독자를 흡인하는 쿤데라 소설의 힘은 여전하다. 그는 20년만에 고국을 찾은 경험으로 '향수'를 썼지만, 50년만에 만난 분단된 땅의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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