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성공회 김성수(金成洙?70) 주교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불우이웃돕기'라는 그와 나눌 대화의 주제가 머리를 짓눌렀다.이웃을 도와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 찬바람이 올라오는 지하철 입구 돌계단에 빈 바구니를 앞에 놓고 앉아있는 노인들을 스쳐 지나가기만 한 사람이 불우이웃을 돕자는 글을 쓰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오늘 인터뷰는 고해(告解)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주교는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연말연시 이웃돕기' 캠페인을 주관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맡고 있다.
_경제가 어려워 이웃돕기 캠페인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 같고. 내년 1월말까지 목표액이 417억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모으시려는지요.
"정말 걱정은 걱정이요. 작년에는 삼성이 100억원, 현대가 50억원을 내놓아 510억원이나 모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현대가 그만큼 내줄지 모르겠소. 그래서 개인의 참여가 중요한 거요.
1,000원, 2,000원씩으로라도 참여하면 국민전체가 이웃을 돕는 기쁨도 누릴 수 있고, 더불어 사는 마음씨도 생길 텐데‥. 큰 회사가 뭉치로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아, 저기 돈이 있구나, 나는 안 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거요.
한 가정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이웃에도 그렇게 마음을 써야 하는 거요. 그게 올바른 국민정서이지."
온화한 표정에 따뜻한 말씨로 올해 모금 전망을 이야기하던 그는 "그런데 어려울수록 신나는 이야기, 힘 솟는 이야기를 해야 해"라고 주문했다.
"내가 학창시절 아이스하키와 농구선수를 해봐서 아는데 실력이 없어도 응원단이 '잘 한다'고 해주면 없던 힘이 생겨나 우승도 하곤 했지. 밝은 이야기만 쓰면 정치인들이 자기들이 잘해서 세상이 밝아졌는지 알고 그나마 손을 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밝은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거요."
_주교님 말고도 요즘 같은 때에는 신문이 특히 밝은 이야기를 많이 써야 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밝은 이야기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착하게 살지도 않는 사람이 밝은 이야기를 쓰면서 남에게 밝게 살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걱정했던 것처럼 기자의 질문은 '고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너무 빨리. 그러나 그는 기자의 토로에 밝게 웃으면서 "밝은 이야기가 보이지 않으면 상상해서 쓰면 되지"라고 말하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 주교니, 총장이니 하는 일 없이 유명세만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숨어서 선행을 하는 사람, 자신은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쓰는 게 더 낫지않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아"라고 덧붙였다.
_사실 올해도 많은 선행이 신문에 보도됐습니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분이나 정신대 할머니가 평생 고생해 모은 돈을 이웃돕기 성금이나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기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보다 선행을 더 베푸는 것 같은데 왜 그렇다고 보시는지요.
"옛말에 '없는 사람이 더 영악하고, 없는 사람이 돈을 벌면 남을 더 안 도와준다'고 했는데 요즘엔 틀리는 것 같아요.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어서 남의 고생을 더 잘 알기 때문 아닐까."(김 주교를 만나러 가던 날 아침 신문에는 '지난 해부터 서울 지하철에 모금함을 놓고 모금을 했는데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설동역에서는 100만원이 모였으나, 부촌의 상징인 압구정동 역에서는 20만원이 채 모이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 기사에 대해 강남의 어느 독자는 압구정동 역은 젊은 유동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이한 역임을 감안하지 못한, 편견이 있는 기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원천적으로 지하철역의 모금함을 볼 수 없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을 것이다.)
_마음은 있어도 실천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지요.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노인에게 천 원 한 장을 던지는 게 천 원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 받으려는 위선적 행위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마음이 있어도 이처럼 핑계를 대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나쁜 것 아닌지요.
"그건 아니요. 사실 그런 사람은 나라가 도와야 하지. 그런 노인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하는 건 정부와 사회의 잘못이니까 말이요. 매일 같은 곳에 나와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개인이 매일 도울 수 있나. 문제는 마음인데, 돕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거요.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선행에 나서게 된다는 말이오. 그런 마음도 없이 이웃에 무관심한 사람 들이 얼마나 많아. 또 도울 때도 마음으로 도와야 해요. 길거리의 노인에게 돈을 줄 때 그 사람의 눈을 한 번은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냥 휙 던지고 가는 건 차라리 안 주는 것 보다 못한 거요. 선행에도 마음과 정신이 깃들여야 받는 사람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
김 주교는 마음으로 돕는 것의 소중함을 예를 들어 이야기 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매일 회사 앞 길에 앉아있는 거지를 지나치다가 어느 추운 날 돕고 싶은 생각이 들어 주머니를 뒤졌더니 그날 따라 한 푼도 안 가지고 나왔다는 구만.
어쩌나 하다가 그 거지에게 다가가 '오늘은 정말 당신을 돕고 싶은데 가진 게 없으니 당신에게 내 체온이라도 전해주고 싶다'며 손을 잡았는데 그 거지가 울면서 이렇게 말 하더래. '내가 몇 년을 구걸을 했지만 오늘처럼 나를 진정으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진정한 선행은 그런 거요."
_돈이 없어 가난한 사람보다 남을 도우려는 마음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가난한 사람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야 한다고 보시는지.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봐요. 그런 사람들은 경주용 말처럼 옆을 보는 눈을 스스로 가리고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지. 그래서는 이웃을 보지 못해요.
십자가를 그을 때도 아래와 위, 좌우로 긋지 않는가요. 십자가에는 항상 아래, 위, 옆을 보고 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웃이 누구인지,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거지.
나도 95년에 서울교구장에서 은퇴하고는 4~5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이웃을 볼 기회가 많았는데 대학총장을 맡고 나서는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다니는 바람에 세상을 제대로 못 보는 것 같아.
지도자들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렇게 다녀야 하는데, 대통령도 반 칸짜리 방에서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야 돼.
바빠서 못한다고 하겠지만 작은 정치를 잘해야 큰 정치를 잘 하는 거예요. 모르지, 내가 바보여서 봐야만 감격하는 건지, 그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 안 봐도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정자들은 시장통 순대국 집에도 가서 민생을 직접 챙기는 것 중요해요".
_젊은 졸부 두 명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어떤 사람이 벤처로 돈 번 젊은이들이 이제 남을 위해 돈을 써야겠다고 하니까 그 젊은이들에게 '누구를 도울 생각을 하지 말고 50대까지 열심히 돈만 벌라'고 그랬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돈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은 우선 돈을 벌도록 해 나이 들어서 남을 돕도록 하는 게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인 것 같아.
그런데 그 말에는 또 '젊은이들이 순간적으로 돈을 벌지 말고, 오래 걸리더라도 질서와 법을 지켜가며 정당하게 벌어야 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아.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가는 모르고 돈을 벌었다는 결과만 생각하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 그러더니 그는 "우리 같은 성직자들이 기도를 덜 해서 그런 일이 생겨났는지도 모르지"라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정부 주도의 이웃돕기추진협의회가 민간 주도로 바뀌면서 1998년 출범했다. 관 주도로 불우이웃돕기운동을 하다보니 사회복지예산을 유용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으며 기금 집행에도 투명성과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던 탓이다.
초대 회장은 강영훈 전 부총리가 맡았으며 김 주교는 2대 회장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하철역 등지에서 연간 모금을 하면서 매년 12월1일부터 이듬해 1월31일까지는 '연말연시 이웃돕기 캠페인'을 실시하는데 모금목표는 각 사회단체로부터 지원희망 액수를 받아 결정한다.
전과 달라진 건 정부 주도일 때는 정부가 인?허가한 단체만 지원을 신청할 수 있었으나 민간주도로 바뀌면서 인?허가를 받지 않았어도 투명성과 공정성만 확인되면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원신청 액수가 매년 늘어나는 어려움이 생겨났다.
●김성수 주교는 누구
1930년 강화도에서 조부 때부터 성공회에 귀의했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배재중학교 졸업반이던 1950년 페결핵에 걸려 투병하면서 소외된 사람의 고통을 직접 겪었다.
"아이들을 좋아해 친척이 오면 아이들을 안아보곤 했는데 친척들이 기겁을 했다.
폐병이 옮겨진다고.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남을 멀리했다. 아니 남이 나를 멀리했다.
찾아주던 친구들도 뜸해졌다." 단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성공회 성미카엘 신학원을 거쳐 1964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 받았다.
서울교구 교구장, 한국성공회 초대 관구장을 지내다 1995년 정년으로 은퇴했다. 올 7월부터는 성공회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성공회 사제를 지내면서 사회개혁과 교회개혁에 힘을 쏟아왔다.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전에 교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말이나 '산 더러 이리 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산으로 가야 산을 알지'라는 말이 그의 사회개혁, 교회개혁관을 대변해주는 말일 것이다. 사제 수업을 할 때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원으로 '위장취업'한 적이 있으며 영산강 간척사업에서 막일을 한 적도 있다.
그의 이런 생각과 경력이 오늘날 성공회대학을 '개혁세력의 구심점'이라는 말을 듣게 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뒤에서 '잘 하는 사람에게 잘 한다'고 박수만 쳤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의 정치판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앞서 성공회대학 총장을 하던 이재정 신부말이요, 개혁한다고 정치에 들어갔는데 힘이 빠진 것 같아. 정치판이 그런 것 같아. 정치꾼이 정치판에서 나와야 그런 사람이 힘을 얻는데‥"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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