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엔 재고만… 30만근로자 실직공포"이러다간 사슬같이 얽힌 1ㆍ2ㆍ3차 협력업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판입니다."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달성공단의 자동차용 에어컨부품 생산업체인 영신기전 박상병(44) 사장. 박사장은 대우차 부도이후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이라며 한숨만 쉬고 있다.
그는 "새벽부터 자금체크로 시작해 원ㆍ부자재 공급업체를 찾아다니며 납품을 설득해보지만 허사"라며 연신 담배만 피웠다.
대우차 부도이후 달성공단 내 29개 대우차 부품업체들은 한달 가까이 운영자금은 물론 일감조차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박 사장은 "어음 할인이 중단되면서 대우차 납품 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손놓고 하루하루 조여오는 부도의 공포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한 하루
대구 성서공단에서 삼성상용차 차체 프레임을 제조하는 ㈜아이.피.씨. 이 회사는 11월 중순 아예 문을 닫았다.
삼성상용차가 퇴출되면서 창고에는 출고하지 못한 차체 프레임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협력업체 임직원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대구시청과 삼성 본사로 몰려가 생존대책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규용 사장은 "올 7월 공장을 인수해 100% 삼성상용차에 납품해왔는데 4개월도 안돼 공장을 폐쇄했다"며 "완제품 350대, 자재 500대분의 재고가 쌓여있고 공장 인수잔금도 치러야 하는 데 정말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우차 부도와 삼성상용차 파산 등으로 어렵게 구축해온 대구지역 자동차 부품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옛 대우기전)를 비롯 400여개 대우차 부품업체들과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32개사가 몰려있는 대구 지역 공단에서는 11월부터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 등 전국적으로 4개사가 부도를 냈고 29개 업체가 어음할인 기피와 외상회수 불능 등으로 1,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30만명의 부품업체 근로자들은 실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과도한 종속관계
연간 매출 8,500억원의 70%를 대우차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델파이는 지난달 말 흑자 도산위기에 몰렸으나 산업은행의 긴급 수혈로 가까스로 한 고비를 넘겼다.
전기장치품과 발전기, 제동장치, 조향장치, 에어컨 등 부지 내 5개의 공장 중 수출 물량이 많은 에어컨 부품 제조공장만 정상 가동될 뿐 평균 가동율이 30%에 머물고 있다.
올들어 대우차로부터 2,900억원 상당의 물품대금과 회사채 등을 상환받지 못한 상태이지만, 297개의 2ㆍ3차 협력업체로부터 돌아오는 어음이 벌써 지난달 220억, 이달 430억원에 달해 최대 경영위기를 맞고있다.
한국델파이 이두원(46) 자금담당 이사는 "지난달 회사채 만기를 겨우 연장해 넘겼지만 장기화하면 협력업체들의 연쇄부도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수출은 걸음마
알미늄소재를 제작해 델파이에 70%를 납품하는 2차협력업체 남선산업의 백선흠(47)사장은 "한 회사에 거래를 시작하면 다른 곳에 거래를 못하게 하는 배타적 거래관행으로 부품공용화가 부진하다"며 "해외 수출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여서 국내 완성차업체에 대한 종속화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상용차 225개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 절박하다. 삼성상용차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협력업체들의 어음은 휴지가 됐고, 올해 초 삼성측의 "내수 신장"발표만 믿고 설비확장을 했던 업체들은 빚더미에 올랐다.
성서공단에서 카페트 등 내장재를 제조하는 미래화성의 이섭(40) 공장장은 "올 하반기 거액을 들여 공장을 2개나 인수하고 삼성상용차의 새로운 모델 금형까지 만들었는데 한 번 찍어보지도 못하고 폐기해야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델파이 전무준 전무는 "정부가 부품업체 회생 방안으로 내놓은 특례보증 한도 확대와 기존 진성어음의 새 어음 교환 등의 조치들이 일선 금융기관 창구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자동차부품업체의 연쇄도산을 막기위해선 금융기관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