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마음 살아 생전 갈수 있을까 조바심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눈을 감아야 만 꿈속에서 볼 수 있던 곳 평양 그리운 고향에 통일 염원을 안고 오늘 이렇게 서다니. 50년 동안 가슴속 깊이 묻고 살아온 그리움의 땅에 이렇게 서다니.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한시간 거리를 50여년이 걸리다니.. 산천은 의구한데 옛 친구가 소식조차 없고 무심한 세월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만남 그 순수의 꽃을 피우듯 혈육이 만나 응어리진 한이 풀리는 곳아! 서럽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평양 그리운 평양이여!
- 봉두완(奉斗玩 한적 부총재ㆍ제2차 이산가족 상봉단 남측 대표단장)
그날(지난달 30일) 우리가 떠나던 날, 하필이면 평양에 안개가 짙게 끼는 바람에 세시간이나 늦게 김포공항을 떠났다.
올해 100살의 유두희 할머니는 내손을 잡고 당기며, "이제 정말 떠나는거여? " 하고 반신반의한 채 머리만을 절래절래 흔들고 있었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6ㆍ25때 인민군에 징용됐던 아들 신동길(75)씨가, 연상 큰 소리로 "어머니, 날 모르겠어 " 하며 울부짖다시피 했건만 할머니는 별다른 표정 없이 아들의 얼굴만 빤히 쳐다봐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한참만에 알아본 아들을 부둥켜 앉고 할머니는 늙은 아들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토요일 오후 평양을 떠나 서울로 오는 고려항공 여객기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는 예정시간보다 또 세시간이나 지체된 끝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서울 다 왔어? 이제 내려야 돼? "하며 안전벨트를 푸는 것이었다.
"아드님 만나서 좋으세요? "
"응, 좋아. 아주 좋아. 근데 밥은 언제 준대? "
예정보다 늦게 떠나는 바람에 점심 한끼를 거른 셈이다. 50년 만의 상봉을 끝낸뒤 강원 원주시로 돌아온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 면서 십년이나 더 젊어진 왕성한 식욕으로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서울 성동구 길동에 사는 김명식(90)할아버지의 경우는 좀 달랐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북에는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냥 조카만 보고왔어. 잘 사나봐. 어델 잘 다닌다고 했는데 그애가 어델 다닌다고 했지? " (아니, 이 할아버지가 자기 조카 어델 다니는 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한다는 거야. 대표단장이 백명의 가족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모양인데.
착각도 이만 분수지 원.)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봐,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게 떠나는 거야? 거 어데 신문에 뭐가 잘못났다며? "
" 할아버지 그게 말이죠 사실은."
"아니 내가 알아. 어데서 들었어. 내가 어데서 들었더라.무슨 신문이지? 본래 그 신문하고 저기하고 사이가 안좋지! "
"그것보다도 몇몇 이산가족들이 장군님 덕분에.하는 바람에.좀."
"그럼 3차는 지장없을까? "
". .! ? " (원, 아시는 것도 많고 관심도 대단하시네)
90이 넘은 할아버지가 이렇게 뚜렷한 지력과 관찰력을 갖고 계신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2차 이산가족 방문단의 특징은 80세 90세 100세 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왕성한 의욕으로 평양행을 결행했다는 것이다.
다녀와서 더욱 맑고 깨끗한 음성으로 자기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많은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 주기위해 방문단 교환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상설 면회소를 시급히 설치해야 한다.
나는 량만길 평양 인민위원장이 베푼 만찬석상에서 그리고 허해룡 북한 적십자회 부위원장 주최 만찬에서도 "앞으로도 이산가족 상봉은 도도한 시대흐름과 함께 계속될 것인 만큼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이 역사적 과업을 차분히 진전시켜 나가자"고 역설했다.
나는 이번에 솟구치는 우리 겨레의 힘을 보았다. 이 열정을 분단을 허물고 평화를 가꾸며 통일의 앞날을 앞당기는 힘의 원천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감동적인 이산가족 상봉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거듭 다짐해야 하는 것은, 지난 50년과 같은 통한의 분단사를 되풀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겁다.
귀에 쟁쟁하다.
" 할아버지, 꼭 다시 오셔야 해요. 다시 만나요 할아버지. 약속해요. 여기 새끼 손가락으로 우리 약속해요. 할아버지! "
차창에 매달리며 엉엉 목놓아 울며 소리치는 어린 손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7000만의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 아, 혈육간의 애틋한 정, 그 무엇으로 끊을 수 있으랴! 오늘은 혼자서 '우리의 소원은' 노래라도 크게 불러야지..
봉두완/한적부총재·재2차 이산가족상봉단 남측 대표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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