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중 대통령의 해외 나들이를 보는 국민의 눈길이 예전과 같지 않다. 이를 감지했음인지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대통령은 '국내사정이 어려운데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국민도 대통령도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나 '아세안+3 정상회의' 참가하는데 대통령이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된다. 세계화와 다자간 정상외교는 국제적 추세이다.
이런 회의에서 논의되는 의제들이 예전에는 안보 문제였으나 점차 경제 문제들로 변화하고 있다.
아마 문제는 잦은 대통령의 해외행차가 한결같이 무겁고 길며, 또 실속 있게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대통령이 해외나들이를 할 때 마다 대통령 수행 기자들이 보내오는 판에 박은듯한 기사가 있다.
바로 '세일즈 외교'다. 그러나 선언적이거나 경제협력의 원칙적인 합의 수준을 갖고 참모들이 '세일즈 외교'라는 포장을 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실감나게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는 간단히 말해 기업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자국의 상품이나 프로젝트 판매 등을 국가적 힘이 실린 대통령의 로비력으로 뚫어나가는 것이다.
그 일을 대통령이 하든 총리나 왕이 나서든 세일즈 외교는 하나의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지난번 APEC 정상회의에 갔을 때 김 대통령이 주최국 브르나이 왕에게 현대건설이 못 받은 공사대금 3,800만 달러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현대건설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판국에서 벌인 대통령이 공사비 받아내기 로비는 현대건설 사람들에게만 격려가 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경제상황에 주눅이 든 국민들에게 '정보격차 해소 방안'이니 '철의 실크로드' 같은 개념적이고 선언적인 말보다는 이런 대통령의 구체적인 노력이 훨씬 실감나게 들리는 것이다.
샤를르 드골 대통령은 60년대 프랑스 자존심의 화신(化身)이었다. 그는 한 때 일본총리를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이라고 깔보며 만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프랑스 대통령들은 세계각국 정부를 상대로 헬리콥터, 고속전철(TJV), 에어버스를 사달라며 끈질기게 세일즈 외교를 벌여왔다.
대통령이 세일즈맨 노릇하기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90년대 초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동차회사 경영진을 데리고 일본에서 세일즈 시위를 벌이다 구토하며 쓰러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세일즈 방법은 훨씬 공격적이어서, 중동 산유국 왕자를 설득해서 거의 다된 에어버스와의 주문계약을 보잉 비행기로 하루아침에 바꾸게 만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 우리나라는 세일즈 외교의 타킷이었다. 북방외교라는 이름아래 소련과 관계정상화를 하면서 30억 달러 원조를 제공해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 대통령이 투자유치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싹텄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 세일즈 외교에 대한 조직적이고 캠페인 같은 것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는 정치적으로 들릴뿐 기업을 북돋는 보약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
클린턴 정부는 집권전반기에 상무부에 '작전상황실(War Room)'까지 설치해서 세일즈 외교를 전쟁에서 하나의 작전을 펼치듯 수행해나갔다. 우리는 미국보다 국력이 훨씬 약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로비력도 약하다. 그러니 세일즈 외교는 더욱 치밀해야 할게 아닌가. 미국 상무부의 작전상황실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대통령은 국방에서 총사령관이듯이 우리 경제에선 톱 세일즈맨일 필요가 있다. 기업은 흔들리고 고용은 불안하다.
이왕 세일즈 외교를 하려면 국민이 실감나게, 기업이 힘을 얻게,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작전을 벌였으면 한다. 누구나 대통령의 해외여행을 반가워 하게.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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