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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당신은 왜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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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당신은 왜 사나요"

입력
2000.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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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니, 좀 더 자주라고 해야 옳을 듯 한데, 저는 제 언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곤 합니다.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가장 절박하고 기본적인 물음은 나 자신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렇지 않니?' 라고 제가 말했을 때,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묻는 저를 의아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던 얼굴들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물론 공감을 기대하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감은 커녕 도무지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러한 발언을 하고도 메아리를 기대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큰 실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순수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람의 본디 마음자리가 아닐까?'하고 말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게 돌아온 반응은 아예 저에 대한 연민의 표정들이었습니다. 제 한심하기가 이러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제가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존재'라는 말이 좀 무겁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못 알아들을 만큼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더구나 '순수'란 말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전달되고도 남을 익숙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문맥을 따라 듣는다면 조금도 어색한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자신합니다. 그렇다면 제 말이 그리 잘못된 것일 수도 없으려니와 오히려 진지하게 깊은 뜻을 담아 애써 말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반응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무척 속상한 일입니다.

제 나름으로는 가장 '존재론'적인 문제를 가장 '순수'하게 발언했던 것인데 그 진지성과 순수성이 외면당한 섭섭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여러 번 되풀이 하다보니 이러한 변명이란 저 자신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제가 한 말에 대하여 떫은 반응을 보여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제는 점차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어휘나 말들이 얼마나 '낡고 바랜 언어'들인가 하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한테 '당신 왜 사는 거요? 당신의 존재의미가 뭐요? 아니, 당신을 이 세상에 지금 당신의 그러한 모습으로, 그러한 일을 하면서, 그 자리에 있도록 한 존재의 뿌리는 뭐요?' 하고 묻는다면, 아마 그러한 물음을 묻는 사람들은 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대접받기가 십상일 듯 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 있는 자리, 그것 괜찮은 자리요?'하고 말한다면 금세 이런저런 반응이 무성할 듯 합니다. 그러니 뒤의 물음으로 말을 열어야 할 텐데 앞의 물음으로 말문을 여니 아무리 진지하게 애를 써도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저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순수'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가 '재미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삶의 바탕이 아닐까?'하고 말했다면 아마 그 반응의 무성하기가 마치 텔레비젼 오락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며 깔리는 청중들의 탄성처럼 대단했을 듯 싶습니다.

저는 말을 하며 살아가는 학교에 있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끊임없이 헛다리를 짚으면서 살아가는 듯 싶습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시대착오도 분수없이 엄청난 시대착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차츰 더 뚜렷하게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하기가 겁이 납니다.

말은 해야겠는데 말하기가 두려운 이 딜레마를 저는 천형(天刑)처럼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어차피 삶이란 제 언어로 저를 발언하다 스스로 그 발언에 책임을 지고 살다가 마침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또 하나의 낡은 시대착오적인 발언이겠습니다만.

정진흥 서울대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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