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기만이가 왔습니다…""형님, 반백년을 애태우다 이제 기만이가 왔습니다. 알아 보시겠어요." "..."
1일 오후 그토록 그리워 했던 형님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ㆍ88) 화백을 만난 북의 막내동생 기만(基萬ㆍ71ㆍ평양미술대학 교수ㆍ화가)씨는 한동안 병상의 운보를 바라보다 오열하기 시작했다. 운보는 동생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50년 한을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달했다.
남과 북의 형제화백이 상봉한 곳은 삼성서울병원 1902호 운보의 병실. 운보가 고혈압과 언어장애 등으로 병상에 누워 상봉장에 오지 못하자 동생 기만씨는 남측과 북측방문단의 협의 끝에 동의를 얻어 이곳으로 달려왔다.
화백형제는 동생이 글로 써서 형님에게 보여 주면 형님은 눈으로 말하는 '필화(筆話)'를 통해 50년 동안 켜켜이 쌓인 형제의 정을 나눴다.
기만씨는 "어서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죠"라며 병으로 야윈 형님의 볼을 어루 만지자 운보는 고개만 끄덕이며 연신 기만씨의 등을 쓸어 내렸다. 기만씨도 3개월전부터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몸이 불편한 상태. 그러나 기만씨는 "나를 다 키워주신 우리 큰 형님이 이렇게 병약해지시다니."라며 형님 걱정에 시종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형님을 뵀으니 소원이 없습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형님이 건강해 지는 것 뿐입니다."기만씨는 병환에 지친 운보의 품에 안겨 다시 통곡했다.
동생이 온다는 반세기만의 희소식에 운보의 기력을 회복시킨 것일까. 지병인 패혈증과 고혈압으로 18일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운보는 산소호흡기와 음식물 주입기까지 끼고 있어야 할 정도로 악화됐었지만 사흘 전 병세 호전으로 호흡기는 뗄 수 있었다. 말을 못하는 운보는 이 날도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지만 동생을 보기 위해 일반 병실로 옮겼다.
운보의 아들 완(完ㆍ51)씨는 "비록 병중이시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이 작은아버지를 볼 수 있게 돼 한을 푸셨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운보의 막내 딸 김 아나윔(44ㆍ안산 사랑의 수녀원 원장) 수녀도 "작은 아버님을 알아 보고 기뻐하시는 걸 보니 눈물이 앞선다"며 감회에 젖었다.
이 날 운보는 평소 아끼던 자신의 그림 '승무(僧舞ㆍ71년작)'와 작품 5,000점이 수록된 5권의 전작도록(全作圖錄)을 동생에게 전했다. 기만씨도 '태양을 따르는 한마음'이란 제목의 6폭짜리 병풍과 난초 등을 그린 동양화 3점, 북에 있는 운보의 여동생의 편지 5통을 건네고 20여분간의 짧은 재회를 마쳤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