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남성 독자로부터 "사무실에 여성이 많아지면서 성희롱도 함께 늘어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속에는 '여성이 옆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성희롱을 하게 된다'는 발상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화가 났다.최근 여성특별위원회 백경남 위원장이 장ㆍ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62명에게 보낸 편지도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것 같다. 편지의 요지는 '연말에 과음을 하면 성희롱이나 여성 비하 발언을 할 우려가 있으니 폭탄주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성희롱의 주범은 술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심지어 '연말을 맞아 잦아질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로 인한 긴장의 해이에 따른 실수가 있을까 우려됩니다'라는 대목에는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인식마저 깔려 있다. 비록 간곡한 부탁으로 시작한 서신이라 하더라도 동료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편지까지 보내야 할 만큼 올 한 해 우리 사회에는 유난히 지도층 인사나 고위 공직자들이 음주로 '패가망신'한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쯤되니 성희롱 예방 업무를 맡고 있는 여성특위로서는 고육지책으로 편지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기회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희롱의 촉매가 '섹시한 여성'도, '폭탄주'도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을 '술자리에서의 꽃' '성적 대상' '업무의 보조적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의 잠재의식이 주범인 것이다.
그래도 못 미더워 또 하나 덧붙이자면. 남성들이여, 알코올은 이성을 마비시키므로 연말에 모두 술조심, 입조심, 손조심 할지어다.
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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