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통곡만이 메아리치던 1차 상봉 때와 달리 웃음과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술과 노래, 춤사위까지 등장했다.선물마저 북쪽 가족에 대한 '경제원조형'에서 '절약형ㆍ추억형'으로 바뀌고 있다.
남북의 상봉장이 이제는 '한풀이 자리'가 아닌 '기쁨과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는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래형 남북관계의 진전을 알리는 긍정적인 전조로 해석하고 있다.
8월15일 서울 워커힐호텔 상봉장에서는 애절한 통곡소리가 2시간여 동안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2차상봉이 이뤄진 센트럴시티에선 울음이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일부 가족은 고향노래를 부르며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반세기만에 만나는 북측 아들 정재갑(66)씨와 남측 노모 안준옥(88)씨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채 꽃을 달아주며 농담을 주고 받아 도리어 주위를 당황케 했다.
리근섭(75)씨는 울음을 터뜨리는 남측의 동생들을 제지하며 "울긴 왜 우느냐. 이렇게 기쁜 날에"라며 크게 웃기도 했다.
오찬이나 만찬장에도 축제의 분위기가 완연했다. 만찬장에서는 북측 가족들이 문배주와 백세주 등에 기분좋게 취해 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춰 주최측을 놀라게 했다. 1일 낮에도 형제들과 오찬을 마친 황진원(67)씨가 조카들을 얼싸안고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을 부르자 다른 가족들까지 이에 합세했다.
선물도 북쪽 가족을 위한 옷가지와 전자제품, 금붙이 등에서 화보집과 가족사진, 앨범, 족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북쪽 가족이 입게 될 피해를 걱정하며 언론 접촉과 신상발언을 극도로 기피했던 남쪽 가족들도 이번에는 오히려 가족 얘기와 옛기억을 늘어놓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행사진행을 맡은 통일부의 김모(45) 소장은 "2차상봉은 마치 명절날 가족만남 같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남북교류가 활성화하면서 이번 상봉이 더이상 '마지막 만남'이 아니라는 희망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양승함 교수는 "이산가족들이 아주 빠르게 남북화해를 현실로 받아들인 것같다"면서 "1차 때보다 국민적 감격은 줄어들었지만 오열보다 기쁜 대화로 만나는 것이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도 "교류의 기회가 늘어날수록 이산상봉은 이벤트가 아닌 생활이 될 것"이라며 "평양 주민들도 1차에 비해 많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여서 남북관계가 민간부문에서 먼저 변화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상봉장 안팎
"100弗 주면 北서 못바꿔" 소동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2박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50년 이별의 아픔을 한꺼번에 달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특히 서울 잠실 롯데월드 호텔에서는 1차 상봉때보다 북측 방문단의 준비가 다양해졌다.
▲ 비디오 못틀자 "야단났네"
김영황(69) 김일성대 교수는 북에서 찍은 자신의 예순돌상(환갑연)과 8월의 생일잔치 비디오테이프를 틀겠다며 우리측에 기계 설치를 요청했다가 송신방식이 달라 틀지 못하게 되자 "이거 야단났구나" 하며 난감해 했다.
하지만 누나 김옥인(81)씨 등 가족들이 도착하자 "이거 누나 드리는 거야"라며 자신이 직접 만든 앨범을 꺼내 사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설명했다.
평양직물도매소 지배인 홍응표(64)씨는 누나 양순(74)씨에게 "내가 크게 나왔다"며 잡지 '조선화보'와 '금수강산'을 건네준 뒤 가족들이 돌려보도록 했다. 홍씨는 미술창작사에 근무하는 딸이 그린 '금강산전도'와 정물화를 선물로 내놓기도 했다.
감격에 겨운 가족들 사이에서는 즉석에서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측 아들 정재갑(66)씨를 만난 어머니 안준옥(88)씨는 "덩실덩실 길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싶다"며 아들 손을 잡고 일어나 춤을 추다 "50년만에 만난 내 아들아"라며 결국 눈물을 쏟았다.
▲ 곳곳서 생일파티 열려
오전 개별 상봉에 이어 진행된 오찬장에서는 생일파티가 속출하기도 했고 이산의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애도하며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족도 많았다.
한편 남측 이산가족들이 북의 혈육에게 선물로 준비한 50달러, 100달러짜리 지폐가 북한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고액지폐로 알려지면서 인근 은행에는 잔돈을 바꾸려는 이산가족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한 이산가족은 "은행에서 여권을 요구해 북쪽 가족에게 주려고 한다고 사정해 돈을 바꿨다"며 다시 환전소로 향했다.
장래준기자 rajun@hk.co.kr
김세정기자 sej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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