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오면 연(連)이와 균(均)에게 전해줄 것. 눈물로 먹을 갈고 백발로 붓 만들어. 떨리는 손에 붓을 쥐니 손 따라 붓이 떨고. (아들아)사는 곳이 어디메냐. 모자 상봉.. 아마도 때는 늦었나 보다. 1991년 8월14일."북에서 온 리석균(72)씨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호텔 남측상봉장에서 석정(63ㆍ서울 강동구)씨 등 남측 동생들이 내놓은 어머니 유영택(작고 당시 90세)씨의 유작 시(詩)를 접하곤 반세기동안 맺힌 한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이 시는 어머니가 형님을 목 놓아 부르다 백발을 잘라 붓을 만들어 쓰셨지요." 석정씨가 대학노트 27권을 꽉 채운 시들의 사연을 설명해주자 석균씨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
어머니 유씨는 94년 숨을 거두기 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를 모아 '내 울어 너 온다'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석균씨는 시집 한편에 "엄마의 백발이다.
보러 올 때 만져보아라"는 한 맺힌 글귀와 함께 남겨진 흰 머리카락을 만지며 다시 오열했다.
눈물을 그친 석균씨는 동생들이 어린시절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을 보여주자 즉석에서 '서울에서 만난 동생'이란 제목의 시를 읊기도 했다.
"23세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이런 솜씨를 갖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저를 남쪽까지 오게한 것 같아요" 석균씨는 헤아릴 수 없는 모정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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