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민영화를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한전이 부채가 34조원이나 될 만큼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덩치 또한 지나치게 비대, 효율 경영이 불가능하므로 분할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하지만 노조는 국가 기간망인 전력산업이 해외 기업에 넘어갈 수 있고 직원 고용이 불안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전 민영화를 공공부문 개혁의 잣대로 보는 정부와, 구조조정의 고통을 노동자만 짊어질 수 없다는 노동계의 입장이 더해지면서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정보화 혁명으로 전력계통 경쟁 가능
구조개편 세계적 대세… 안될말
■ 찬성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굴뚝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야 제조업 경쟁력의 강화가 가능한 시대이다. 나라마다 한발이라도 앞서기 위한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미 상식이다. 개인이건 나라건 여기에서 뒤떨어지면 정보 격차(디지털 디바이드)의 저편 나락으로 밀려난다. 앞으로 수백년 선진국과 후진국의 분수령은 정보화로 결정된다. 이것이 온 나라의 힘을 정보화에 쏟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정보화가 유독 전력산업에서만은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닥쳐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던 전력산업을 구조개편한다고 야단인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하게는 긁어 부스럼이라고 탓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밖을 보자. 세계 모든 나라가 경쟁을 도입하는 구조개편의 길을 다투어 가고 있다. 결코 과거에 전력공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나라 전력회사가 잘 운영되었건 문제가 많았건 너도 나도 구조개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지금까지의 성과가 문제되지 않을 큰 기술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쟁이 불가능하였지만 이제는 도입가능해진 것이다.
고속도로와 철도를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의 철도에는 철도청이 관리하는 열차만이 달리지만 고속도로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통행료만 내면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속도로가 도로공사의 관리자산이지만 도로공사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사용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보장한 법적 조치를 접속개방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철도에는 접속개방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그 까닭은 접속개방을 통하여 열차운송에 경쟁을 도입할 경우 뒷감당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쟁사업자들이 사업 잘되는 노선과 시간대에 서로 운행하려고 다투면 철도가 마비될 것이 뻔하다. 운행사령실에서 잘 정리하면 되겠지만 이것이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무리하게 경쟁을 도입하여 사고를 유발하느니 독점의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이다.
전력흐름의 관리는 철도운행의 관리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매순간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와 계통형편에 공급을 섬세하게 맞추어 주어야 한다.
수요는 어쩌지 못하겠지만 발전소의 가동은 철저하게 중앙통제 아래 두어야 안전한 전력 공급이 보장될 수 있었다. 이런 터에 송배전망을 접속개방하더라도 경쟁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각국이 지역독점체제로 전력산업을 유지해 왔던 것은 독점이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경쟁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정보화혁명 덕분에 경쟁이 펼쳐진 가운데에서도 전력계통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계통운영기술이 가능해 진 것이다.
기술적 애로가 타개되었으면 신기술을 수용하는 조치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바로 이것이다. 신기술의 수용이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의 전력산업은 그 만큼 낙후될 뿐이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결코 무슨 명분으로도 지연될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다.
국내외 독점자본에 기간산업 내주는 꼴
전문경영 도입, 자체 경쟁력 강화를
■ 반대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외자유치는 투자의 성격과 국내 여건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안은 한전을 6개 자회사로 분할하고 원전을 제외한 5개사 중 2개사를 해외매각하는 등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인정하듯, 자산규모가 평균 3조원이 넘는 자회사들의 규모로 보아 매입할 수 있는 곳은 해외 대자본이나 재벌 뿐이다(경제력집중을 고려한다면 당장은 해외매각 뿐이다). 이는 정부가 말해 온 '경쟁을 도입해 효율을 높이는 것'과는 대단히 거리가 먼, 국내외 독점자본의 기간공익산업 지배이다.
한전은 올 상반기 순이익 1조1,400억원, 8월 현재 부채비율 98.1%에서 보듯 작년 연말 부채비율 200%선을 채우지 못해 편법을 동원해야 했던 재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건실하다.
며칠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정부는 다급해지자 경쟁이니 효율은 그만두고 "외국자본에게 이미 민영화를 약속한 상태여서 이를 안 지키면 대외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 공여조건에 공기업구조개편이 들어 있고 공기업민영화방침이 발표되는 1998년 7월을 전후하여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양해각서에 공기업민영화가 들어가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제기구의 압력이 거세다고도 말하고 정부가 알아서 '과잉충성'을 한다고도 말한다.
한국의 전력요금은 정부 스스로 '비정상적으로 낮은 요금'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이 때문에 민간자본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그간의 지분매각과 해외설명회 과정에서 이미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과 투자보수율 인상방침을 언명한 바 있다.
또 한전을 자회사로 분할하는 경우 따르게 되는 연대채무와 디폴트(해외 채권단의 채무조기상환요구)문제에 대해 정부는 해외 채권단의 양해와 동의를 구해놓았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그냥 양해했을 리는 만무하고 부대조건이 있었거나 아니면, 대우차 매각에서 보듯, 차후 우리의 입지가 매우 취약해지는 사태가 예상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책임있게, 소상하게 설명하는 당국자가 없다.
정부는 전력산업 민영화가 해외 추세라고 말하지만 각국의 민영화는 에너지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조건 속에서 추진됐으며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 역시 민영화 후 독과점기업간의 가격담합과 건설투자 기피, 인수합병(M&A) 등으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효율 개선에는 크게 소유구조개편(민영화)의 방법과 지배구조개편(전문책임경영)의 방법이 있다. 민간 대기업의 족벌적 세습경영에서 보듯이 지배구조개선이 없는 한 소유구조개선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낙하산인사와 허수아비 사외이사 등 그간의 폐습을 전문책임경영으로 바꾸고 공익산업에 대한 공중의 감시를 강화하는 등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경쟁력 강화를 도모함으로써 공기업의 투명경영이 재벌 등 대기업의 경영효율 개선에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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