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대입수능의 난이도 적정성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은 처음부터 공정성을 잃은 논란이다.한쪽의 주장이 잘못을 이미 저질러 놓고 이를 쓸어덮기 급급한 변명성 주장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교육부나 출제팀도 작년도 수능의 변별력 부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평점이 작년보다 4∼5점 낮아지도록 출제하겠다고 했으니 이것이 적정 난이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다가 의도보다 수 십점이나 높아지는 실수가 예상되자 오히려 금년도 문제의 난이도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합리화 작전에 돌입했다.
쉬운 수능은 상위그룹의 변별력만이 문제된다며 수능은 이들 상위 몇 % 그룹만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년도에 나타난 변별력 결핍의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한 2002년도 입시계획을 굳히고 지필고사 등 대학자체의 변별력 보강 노력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러한 정부 태도의 합당성 문제는 논할 가치조차 없으나 침묵하는 사이 벌어질 일이 염려되어 교육부 주장의 헛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과거 본고사 시절이나 수능이 지금보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상중하 어느 그룹에 대해서도 변별력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다만 효과 없는 것으로 이미 판명된 과열과외 해소의 명분으로 의도적으로 점점 쉬워지다가 이번에는 실수까지 겹쳐 더욱 쉬워져 교육부의 말을 그대로 믿더라도 상위 몇 % 그룹의 변별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에 대해 변별력 문제가 없던 과거의 수능과 일부 그룹에라도 변별력이 문제되는 올해의 쉬운 수능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는 자명해진다.
둘째, 학문의 세계에서 상위 몇 % 그룹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식한 처사이다. 학문을 논할 때는 다수결의 원리가 통하는 것이 아니다. 상위 몇 % 그룹은 물론이고 가장 우수한 단 한 사람의 의견이 나머지 전체의 의견보다 우수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학문을 통한 국가경쟁력 문제에서 이들 상위 몇 % 그룹의 가치는 나머지 전체의 가치보다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지필고사 등 대학의 변별력 보강 노력을 봉쇄하면서 나머지 변별력 문제는 입시전형을 다양화하여 해결하라고 한다.
말이 멋있어 다양화지 사실 따지고 보면 다양화할 객관적 자료가 무엇이 있는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다양한 고교교육, 대입에서의 이에 대한 평가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교육을 시킬 준비가 안되어 있고, 시킨 것도 없고, 따라서 평가할 것도 없다.
이는 마치 다른 무기가 준비되지 않은 전쟁터에서 총칼을 모두 빼앗고 좀 더 다양하게 싸워보라고 병사들을 다그치는 국방부와 무엇이 다른가?
23일 저녁에는 수능의 난이도 문제에 대한 TV 토론까지 벌어졌는데 여러 가지 교육부의 느끼한 주장에 대해 토론자들의 반박이 좀 더 효율적이지 못해 교육부가 앞으로도 더 무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 글을 쓴다.
그런데도 전화를 통한 시청자들의 여론조사 결과 수능이 변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 어려워져야 한다는 쪽이 그 반대쪽의 두 배 이상이나 되었다.
금년도 수능의 난이도 조절의 실패를 단순히 비방하자는 것이 아니다. 출제팀에서 난이도를 4∼5점 하향 조정하겠다고 할 때부터 어떻게 저렇게 점수까지 대며 난이도를 정확히 조정하겠다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 했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정착단계에까지 왔더라도 항상 반대의견에 귀기울이며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앞에 저지른 작은 실수를 덮느라고 건너오기 어려운 강을 자꾸만 건너가는 우리의 교육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치모ㆍ울산대 수송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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