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12월1일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혼인성사를 올렸다.집전자는 페슈 추기경. 그들은 이미 1896년부터 결혼 상태였다. 이 부부가 이날 특별히 혼인 성사를 올린 것은 나폴레옹이 그 이튿날 대관식을 치르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2일, 같은 장소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제정을 선포하고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당연히 조제핀은 황후가 되었다. 그때 황제는 35세였고, 황후는 그보다 여섯 살이 많은 41세였다.
그때 그들은 삶의 정점에 있었다. 코르시카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나 프랑스인도 이탈리아인도 아닌 회색인(灰色人)의 정체성으로 유년기를 보낸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물살을 타고 유럽에서 가장 힘센 군주가 되었다.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섬의 트루아질레에서 프랑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난 조제핀은 결혼 실패 이후 발을 들여놓은 파리의 사교계에서 젊은 장교를 만나 그를 유혹한 덕분에 프랑스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백년해로한 것은 아니다. 조제핀으로부터 후사를 볼 수 없었던 황제는 1809년 그와 이혼하고 그 이듬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와 재혼했다. 황제는 이 두번째 결혼에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탈취자이자 전파자였다. 그는 1799년 브뤼메르의 쿠데타로 제1통령이 돼 군사독재를 펼침으로써 민주주의를 배반했고, 마침내 황제가 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공화주의를 부정했지만, 연이은 침략 전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유럽 곳곳에 뿌렸다. 나폴레옹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동경을 담은 이른바 '나폴레옹 전설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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