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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뉴아트 / 아마겟돈서 유토피아까지 예술의 극한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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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뉴아트 / 아마겟돈서 유토피아까지 예술의 극한 보여줘

입력
200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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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충격적인 작품이 발표되면 평론가들은 전례 없는 작품이라고 흥분한다.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왔을 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미술계는 요란을 떨었다.

변기를 오브제로 한 뒤샹의 '샘'이 지금도 파리의 퐁피두센터나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 세계미술관에 정중히 모셔진 것을 보면 그 작품이 대단한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1997년 YBA(Young British Artists)가 런던 왕립미술관(Royal Academy of Arts)에서 '센세이션 전'을 열었을 때도 세계미술계는 이에 못지않는 충격을 나타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당시 전시회를 찾은 관객은 무려 30만 명이었다.

3년 후, 세계미술계는 '묵시록- 현대미술의 아름다움과 공포'(Apocalypse- Beauty and Horror in Contemporary Art)라는 전시회로 또다시 흥분하고 있다.

97년 센세이션전 이후 왕립미술관의 첫 현대미술전이다. 두달 전 개막, 12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이미 올해 세계 언론을 가장 많이 탄 미술계의 사건이 되고 있다.

운석을 맞고 쓰러져 있는 교황 모습에서부터 새디즘적인 남녀의 성교, 온갖 쓰레기 등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풍스런 분위기의 왕립미술관을 파격과 충격의 현장화했기 때문이다.

97년 전시가 영국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전시회라면 묵시록전은 영국 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세계의 청년 작가가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묵시록'은 성경 '요한계시록'(묵시록)에서 따온 제목이다.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말세(세기말)에 일어날 일을 환상으로 체험하고 기록한 예언서이다. 13개의 설치작품, 회화, 조각, 비디오 작품은 부(富)와 아름다움, 공포, 다양성이라는 21세기 미술의 화두를 제시한다.

전시회를 가장 섬뜩한 분위기로 몰고가는 작품은 제이크 채르만(36ㆍ영국)~ 디노(38) 채프만 형제의 '지옥'이다.

9개의 진열장 안에 전시된 작품들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케한다. 갓난아이의 손가락보다 더 작게 제작된 수천개의 미니어처 군인과 희생자들은 전기줄에 목이 매달리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나뒹구는 해골로 표현되고 있다.

가스실에서의 처형 장면 등 나치시대 고문 광경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마리조 캐틀란(40)은 1990년대 이후 주목받는 이탈리아 작가다. 거대한 운석에 맞아 빨간 카펫에 쓰러져 있는 밀납인형의 교황 모습은 충격적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을 암시라도 하듯 바닥에는 크고 작은 유리 파편들이 널려있었다.

천장의 나무 창살과 유리창까지 부서져 있었다. 십자가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고뇌에 찬 교황의 얼굴표정을 보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교황은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구원을 받은 것일까. 교황의 의관이 온전한 것으로 미루어 작가가 가톨릭을 모독하려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그는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역시 영국 작가인 팀 노블(34)과 슈 웹스터(33)는 쓰레기 더미로 방을 꾸미고 있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쇼핑백, 플라스틱컵, 바나나껍질 등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약한 조명 속에서 쓰레기 더미는 언덕 위 풀밭에 앉아있는 남녀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품제목은 'Motherfucker'. 퀴퀴한 쓰레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

크리스 커닝햄(30ㆍ영국)의 '플렉스(Flex)'는 18세 이하는 관람불가인 X등급의 포르노그래피를 선보이고 있었다.

근육질의 남녀 무용수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다가 갑자기 돌변, 서로 치고 박는 공격적 광경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커닝 햄은 영화 '에일리언 3' 의 특수효과를 맡기도 했고, 가수 마돈나의 비디오제작을 감독하기도 했던 재주꾼이다.

마리코 모리(33ㆍ일본)의 'Dream Temple'은 투명한 유리와 반짝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꿈의 사원이다. 일본의 진자(神社)를 재현한 듯 캡슐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하며 휴식하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전시실 중 관객들로 가장 붐비고 있었다. 패션디자이너이자 일본의 화장품 시세이도의 광고 모델을 맡기도 했던 스타 마리코 모리가 직접 제작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디어만 주고, 작품은 테크니션이 만드는 21세기 예술의 특징은 아닐까.

대량학살의 공포에서 유토피아의 아름다움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예술이 표현할 수 있는 극단적 한계를 모두 표현한 전시회였다.

큐레이터인 노먼 로젠탈은 분노와 충격의 예술에서 치유의 경험까지도 찾기를 권하고 있다. 아마겟돈에서 새로운 예루살렘까지 제시하는 전시회라는 것이다.

전시장 문을 나서면서 자문해 보았다. 공포스러웠는가고? 아름다움은 보았느냐고? 글쎄.지루하지는 않았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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