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는 시장진입 장벽이 높은 품목이 있습니다. 여성복이나 캐주얼은 한 해에도 여러 브랜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반면, 신사정장은 몇 개 대기업이 탄탄하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이와 비슷한 것이 여성의 브래지어입니다. 국내에선 1950년대 중반부터 비비안과 비너스가 여성 브래지어와 팬티를 생산했는데 두 품목 만으로 한해 740억원(비비안), 510억원(비너스)의 내수 매출을 올립니다.
스타킹까지 합쳐 두 브랜드의 란제리 시장 점유율은 30%가 넘습니다. 브래지어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복잡한 공정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브래지어 생산에는 15~20개의 자재가 들어갑니다.
운동화 밑창을 만드는 데 쓰이던 에어 쿨 메시는 착용감과 통기성을 좋게 하기 위해 브래지어에 도입됐고, 우주선에 쓰기 위해 개발된 형상기억합금은 와이어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습니다. 후크도 예전엔 두툼하게 박았지만 요즘은 고주파를 쪼여 깔끔하게 붙입니다.
봉제 공정은 30번 이상입니다. 부직포 상하컵 연결, 밑받침 좌우 연결, 언더바스트 테이프 봉제..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이어의 모양을 잡아주는 공정으로 와이어를 감싼 천을 안으로 접어넣고 정확히 겹쳐 박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실수를 하면 컵이 짝짝이가 돼 불량품이 됩니다. 1~2㎜ 차이에 불과한 시접을 일일이 손으로 접어박는 것은 숙달된 생산자만이 해 냅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비비안의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브래지어는 단가는 싸지만 국내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어 동남아 등지로 수출만 합니다.
또 어려운 공정기술은 이음선이 없는 브라 컵입니다. 부직포를 가슴 모양의 금형에 찍어 만드는데 예민한 천까지 이음선 없이 싸는 것은 고도의 기술입니다.
동시에 브래지어는 가장 화려한 디자인이 가미되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편해도,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여성들이 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컵과 받침을 이어주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겉을 다시 한번 덧씌워 깔끔하게 만들고, 어깨끈에 화려한 무늬를 넣어 편직(編織)하거나 투명 어깨끈, 체인 어깨끈 등을 개발합니다. 업체들은 1년 동안 1,500종의 브래지어를 만들고 이중 400가지를 고객에게 선보인다고 합니다.
개발된 브래지어는 우리나라 여성의 표준 사이즈인 75A, 80A에 가장 가까운 피팅 모델이 먼저 입어 봅니다. 패션모델 중 또는 아르바이트 삼아 지원한 사람 중에서 골라 일년 내내 시제품을 입힙니다. 이들은 겉옷의 피팅 모델에 비해 20~30%정도 많은 모델료를 받습니다.
1907년 미국 패션전문지 보그에서 처음 '브래지어(Brassiere)'라는 말이 등장한 이후 브래지어는 가장 중요한 여성 패션품이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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