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세인트(聖)다' 라는 아름다운 수필로 우리에게 1970년대적 감성을 일깨워준 시인이 있다. 에세이에서 그려진 대로 오솔길과 산책로, 신작로 등 대부분의 길은 만남에의 희망과 미지에 대한 설렘, 이별의 서러운 서정을 거느리고 우리 앞에 아스라이 뻗어 있다.그러나 고속도로에 이르면, 길의 서정성은 기계적 이미지로 대치된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고속도로를 '공간의 평가절하'라고 정의한다.
고속도로로 인해 공간은 이동에 방해가 되는 단순한 장애물, 시간낭비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길이 풍경으로부터 사라지기 전에, 먼저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사라지고 있다고 탄식한다.
뉴욕에서 휴양도시 애틀랜틱시티까지 고속도로를 간 적이 있다. 길가는 큰키나무의 행렬이 두 시간 가량 이어지는 가로수 숲이었다.
그 길에 들어서며 우리는 감탄했다. "얼마나 멋진 길인가!" 그런데 한 시간 이상 달리니 그게 아니었다. 아무도 더 이상 멋지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로수 숲 너머에 있을 강이며 산, 벌판, 집 등 인간적 풍경들이 몹시 보고 싶었다.
다리는 물 위로 이어지는 길의 연장선이다. 그 여행 길에 세계에서 가장 긴 뉴올리언즈의 코즈웨이 브리지를 건넜다.
폰차트레인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38㎞의 그 다리는 처음에 단조롭고 밋밋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차는 진입한 지 5분이 안되어 물 한가운데로 뻗은 외길을 달리고 있었다.
주변은 호수가 아니라 큰 바다 같았다. 경이로운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 보면 눈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수평선 위로 떠나온 도시와 가 닿아야 할 육지가 가물가물하고, 물 위를 나는 갈매기와 구름의 유혹이 정겹다.
앞뒤로는 야트막한 난간에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는 일직선의 길(다리)만 외롭다. 그 상쾌함은 일망무제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이었다.
전국토가 도시화함에 따라 하나의 건축물에도 서정성과 미학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올 가을 국내에서 두 개의 큰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미술의 거리인 서울 인사동 길이 새 단장을 마쳤고, 서해대교가 경기와 충남 땅을 연결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길다'는 서해대교 기사를 읽다가 이내 실망했다. 기사는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된 일대 장관(壯觀)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놓다니.. 참으로 애석했다. 이제 사람들은 다리 중간에 차를 세우고 바다 구경을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방어벽을 '일반적인 높이'로 하되 바람으로 인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80㎝ 윗부분의 바람막이를 투명 플라스틱으로 했어야 한다.
더 심한 악천후일 경우 일시적으로 교통통제를 한다면, 나들이 길의 사람들에게 절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무신경한 예를 인사동에서 본다. 인사동 길은 지금 채석장을 방불케 한다. 쉴 자리를 위해 놓았다는 거대한 돌이 행인의 발걸음을 방해하기 일쑤이며, 애틀랜틱시티 길의 가로수 숲처럼 시각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턱 없이 많은 그 석물들의 형태는 조악하거나 우악스러울 뿐, 장인적 정성과 섬세함 조차 찾기 어렵다.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과 미학은 여백의 미와 여유의 멋, 주변과 조화를 이룬 넉넉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해대교의 방어벽을 낮추고, 인사동의 돌들을 대부분 치워야 한다. 그 전까지는 실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래부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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